설거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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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면서
밥 먹고 설거지하듯이
시를 쓴 뒤 설거지를 해야 했다
먹기 위해 밥상에 놓였으나
막상 내 몸에 들어오지 못 한 것들
채 익지 않아서
간이 맞지 않아서
너무 질겨서
소화가 안 되서
몸에 좋지 않아서
더 더욱
그저 먹기 싫다는 핑계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들
내 시의 밥상에서도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
생각이 익지 않아서
다른 말과 섞이지 못 해서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서
다듬어지지 않아서
뒷감당이 되지 않아서
더 더욱
그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의 목구멍을 넘지 못 한 말들
세콤 달콤 부사들
알록달록 고명같은 형용사들
바다를 가르런 고등어 비늘같은
동사들
감칠맛 나는 조사들
봄, 그대, 바람, 당신…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던
수 많은 명사와 대명사들
퐁퐁 몇 방울 거품 속에 사라지는
사랑, 슬픔, 그리움…
은밀하고 수상하고 추상스러운
은유의 언어들
배고픈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먹고 일용한 양식이 되었을
탄수화물, 단백질 가득한
재료들이여
흘리는 밥알 한톨에도
호통을 치시던 할아버지
먹을 것 버리면 천벌 받는다
지청구하시던 할머니가 무섭다
고로 나는 외친다
시인은 충분히
가난해야 하고
무척 허기져야 한다
최잭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야만
말 한 마디도 허투로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언어의 꼬랑지들이
쓸데없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댓글목록
김재숙님의 댓글
하하하~~ 웃으면서 혼나기는 처음이네요 다 옳은 말씀을 시로 엮어 놓으시니 천장에 매단 아꺼운 조기 같이 자꾸 보게 됩니다 살도 발라 먹기전에 조기의 맛을 두고 조근조근 생각하며 시를 쓰겠습니다 시인님~~^^
cosyyoon님의 댓글의 댓글
부끄러운 저의 시에 한 말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우님의 고운 시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서로 '시 품앗이'를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