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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면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cosyyo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99회 작성일 25-10-31 08:33

본문

설거지를 하면서

 

밥 먹고 설거지하듯이

시를 쓴 뒤 설거지를 해야 했다

 

먹기 위해 밥상에 놓였으나

막상 내 몸에 들어오지 못 한 것들

 

채 익지 않아서

간이 맞지 않아서

너무 질겨서

소화가 안 되서

몸에 좋지 않아서

더 더욱

그저 먹기 싫다는 핑계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들

 

내 시의 밥상에서도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

 

생각이 익지 않아서

다른 말과 섞이지 못 해서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서

다듬어지지 않아서

뒷감당이 되지 않아서

더 더욱

그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의 목구멍을 넘지 못 한 말들

 

세콤 달콤 부사들

알록달록 고명같은  형용사들

바다를 가르런 고등어 비늘같은

동사들

감칠맛 나는 조사들

 

, 그대, 바람, 당신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던

수 많은 명사와 대명사들

 

퐁퐁 몇 방울 거품 속에 사라지는

사랑, 슬픔, 그리움

은밀하고 수상하고 추상스러운

은유의 언어들

 

배고픈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먹고 일용한 양식이 되었을

탄수화물, 단백질 가득한

재료들이여

 

흘리는 밥알 한톨에도

호통을 치시던 할아버지

 

먹을 것 버리면 천벌 받는다

지청구하시던 할머니가 무섭다

 

고로 나는 외친다

 

시인은 충분히

가난해야 하고

무척 허기져야 한다

최잭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야만

말 한 마디도 허투로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언어의 꼬랑지들이

쓸데없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댓글목록

김재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하하~~  웃으면서 혼나기는 처음이네요 다 옳은 말씀을 시로 엮어 놓으시니 천장에 매단 아꺼운 조기 같이 자꾸 보게 됩니다  살도 발라 먹기전에 조기의 맛을 두고 조근조근 생각하며 시를 쓰겠습니다  시인님~~^^

cosyyoon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cosyyo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부끄러운 저의 시에 한 말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우님의 고운 시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서로 '시 품앗이'를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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