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암호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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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암호를 읽다
−자작나무 숲에서
활엽수림의 하얀 척추가 곧게 선 이곳은
별빛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은하의 벼랑을 건너온 별똥별 하나
내 저녁의 눈시울로 떨어질 때
나는 자작나무 수피 위로 스민 빛의 예각을 읽었다.
스스로 몸은 태운 별빛이
자작나무의 껍질에 이식되어
은빛의 몸부림으로 세상에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나는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바람의 숨결 따라 흔들리던 가지들
그 떨림이 언젠가 언어가 되어
빛의 자국을 남긴 듯 자작나무는 제 몸으로 쓴 편지다.
나는 그 수피를 펼쳐 한 글자씩 만져보았다.
쏟아지던 빛의 암호가 지상의 언어로 번역되는 자리,
자작나무 숲은 눈부신 은유의 무게로
세상의 경계와 속살을 가늠하게 했다.
하얀 숲이 겉옷을 벗는다.
여름 내 가지 사이 헤엄치던 푸른 언어들도
이제 땅으로 내려왔다.
소멸과 부활의 위대한 순환,
낙엽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숨결이
생의 모퉁이를 반질하게 닦고 있다.
하늘마당을 쓸고 있는 억새풀의 길,
그 옆으로 혈관처럼 뻗은 은빛 침묵의 외침을 따라 걷는다.
그 외침도 한때
봄의 새순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나는 잊지 않는다.
나는 토르소처럼 잘린 침묵을 지나
자작나무 숲의 썩은 그루터기에 앉아 이름 없는 신을 부른다.
외로움은 오래된 기도처럼 몸 안에서 울리고
한때 나뭇잎을 향해 솟구쳤던 뼈마디가 다시 저려온다.
나는 아직도
자작나무가 품은 우주의 깊이를 다 읽지 못한 지상의 노숙자,
뼛속에서 별꽃들이
떼를 지어 피어나려는 기척이 들린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한줄기 빛이 다시 수피 위를 흘러간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소리가 없어도 말이 된다는 것.
침묵도 너와 네가 소통하는 또다른 언어라는 것.
은빛 찬란한 겉옷을 두른 자작나무 숲을 상상하며
행간에 앉아 사색에 잠겨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수퍼스톰님의 댓글
마음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꽁트 시인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35P삼오님의 댓글
가끔 눈에 들어오는 빛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 무엇이든 불사를 수 있는 맹목을 가진 삶을 원하곤 합니다. 이미 그 마음가짐 자체로 빛을 순수히 볼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아서요.
수퍼스톰님의 댓글
자작나무 숲을 우주와 언어가 만나는 장소로 보고
빛, 별, 바람, 나무의 흔들림을 하나의 암호이자 메시지로 보고자 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