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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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작도 닿지 못한 자리,
빛이 스스로를 잊기 전의 고요가 있었다.
그곳 한복판에 투명한 틈처럼 놓인 거울,
형태도 빛깔도 없으나
모든 존재의 첫 숨결을 비추는 원초의 창(窓)이 있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눈동자보다 먼저 영혼이 흔들렸고,
이름 붙이기 전에 머물던 나의 본래가
물결처럼 느린 떨림으로 돌아왔다.
신의 거울은 물질을 비추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질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빛의 실로 하나씩 풀어내고 있었다.
거울은 말없이 보여주었다.
시간이 겹겹이 구르는 차원을 가로질러
나를 이루는 모든 기억의 기원을.
별의 탄생에 스친 미세한 기척,
첫 생명이 숨을 내쉴 때의 진동,
알 수 없는 의지들이 모여
하나의 의식이 되기까지의 황홀한 연대기.
그러나 신의 거울은 진실만을 반사하지 않았다.
반사된 나의 형태 주변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너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조용하지만 압도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녹아내렸다.
두려움조차 자신의 본래 결을 찾아
맑은 물처럼 바닥에 고였고,
남은 것은 단지 존재가 존재를 바라보는
가장 순수한 투명함뿐이었다.
나는 감히 손을 뻗어
거울을 어루만지려 했으나 그 순간 깨달았다.
신의 거울은 멀리 놓인 신비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호흡,
내가 내 삶을 향해 비추는 작은 빛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나
내가 비추는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거울을 본 자는 안다
존재의 깊은 틈새마다 신의 숨결처럼 고요한 빛이 서려 있음을,
그 빛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신이 우리를 바라보던 눈으로
스스로를 보게 된다는 것을.
댓글목록
최현덕님의 댓글
하늘이 처음 내 얼굴을 보여주고
바다는 큰 거울로 내 얼굴을 반사하고
구름은 주름을 펴가며 낮 달을 내 보이고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신이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거울속에
하나님도 존재하고 부처님도 존재하며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거 같습니다.
눈을 번떡 뜨게하는 신비의 거울을 잘도 표현 하셨습니다.
일취월장 하시길 축원합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의 댓글
부족한 글에 이토록 좋은 글로 광을 내주시니
덩달아 저의 글이 힘을 얻네요.
늘 건필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시인님.
힐링링님의 댓글
신앙의 깊은 축적없이 다가 설 수 없는 실존주의의
이 단독자의 고백을 마주하게 합니다.
모든 철학의 기본이 나는 누군가에서 시작되어
세상의 현상과 함께 추구해온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신의 거울이었습니다.
이 물음에 내밀하게 파고들어 철학적인 것을 뛰어 넘어
단순화 시적인적 감성을 덧입혀
보다 구체적이고 근원적을 풀어냅니다. 이 시는
시인의 내적 고백이자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에
답을 듣고자 하는 하는 열망이 철철 넘치게 합니다.
언제나 뛰어난 감성의 벽을 뛰어 넘어 손에 쥐어주는
시인님의 마력은 어떻게 자로 잴 수 있을까요 .
한 쪽은 눈이 오고 한 쪽은 비가 내리는
2월의 끝자리에서 큰 박수를 보냅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늘 좋은 시평으로 함께 해주시는 시인님.,
시인님의 시평으로 인해 저의 부족한 글이 짙은 화장을 했네요.
신의 상징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과 가능성을
성찰하는 내면적 체험을 그리려고 했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좋은 글로 용기를 주신 힐링시인님, 늘 건필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