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서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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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바라보면
잠에서 덜 깬 하늘이 누워 있다.
빛은 방향을 잊은 채 선과 선 사이에서 증발하고
구름은 물고기처럼 피부 아래를 유영한다.
나는 이름을 부르지 않은 채 하늘을 만지고,
만졌다는 감각만이 현실을 대신한다.
손금은 꿈의 문장들,
끝내 발음되지 못한 예언처럼 겹겹이 포개어져 있고
그 위로 별빛이 흘러 밤이 낮은 숨을 쉰다.
시간은 액체가 되어 손바닥 가장자리에 고였다가
떨어질 듯 말 듯 계속 흔들린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느리다.
번개조차 생각한 뒤에야 빛이 되고
천둥은 기억처럼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하늘은 부서지지 않기 위해 안개가 되고
나는 그 안개를 쥔 채 깨어 있는 꿈을 연습한다.
손을 오므리면 바람이 안쪽으로 접히고
바람 속에서 낯선 계절의 냄새가 난다.
아직 오지 않은 이별,
이미 지나간 탄생들이
구름의 주름으로 남아 천천히 이동한다.
이 하늘에는 중심이 없다.
위도 아래도 없이 다만 맥박처럼 미세하게 떨 뿐.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하늘이 멀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라는 것을.
손바닥의 하늘은 눈을 감을수록 넓어진다.
잠과 잠 사이의 얇은 틈에서 별들이 흘러나와
말 대신 빛으로 속삭인다.
놓아주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기억과 꿈과 체온이 뒤섞여 이 작은 하늘을 이룬다.
그리고 새벽이 오면
손바닥은 다시 평범한 살이 되지만
한동안 하늘의 잔상이 남아
나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손바닥에도 작은 하늘이 있었군요.
꼭 부처님 손바닥 안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 드네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사람은 외부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 속에서 세계를 만들어낸다 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손바닥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도
하늘처럼 넓은 세계와 시간, 그리고 기억이 담겨 있음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장희 시인님.
힐링3님의 댓글
손바닥이 바로 벚꽃 세상을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외형은 세상이나 손바닥으로 들어서면 세상사를
피었다 졌다는 그 시간을 꽃으로 펼쳐 놓아
또 하나의 시간의 만개인 이 벚꽃을 접합니다.
그냥 읽어 내려가면 손바가인데 이것을 뒤집어 보니
이 섬세한 벚꽃을 피어 놓은 봄날의 한 폭 풍경인을 봅니다.
이 속에 벚꽃이 없는데 언어의 연금술사는
이것을 벚꽃으로 피어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은 이유는
하늘이 멀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라는 것을
우리가 이 봄날을 맞이 하면서 자기라는 생이
꽃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벚꽃인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시간의 손바닥에서 놓치고 있음을 속삭여 줍니다.
눈에 보는 현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현상을 펼쳐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부족한 글에 늘 좋은 말씀으로 힘을 얹어 주시는 힐링시인님 감사합니다.
내면의 감각과 우주적 이미지가 맞닿는 순간을 묘사해 보려고 했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감각과 시간의 유동화를 통해 내면과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일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편안한 오후시간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힐링시인님.
일미터님의 댓글
손바닥 안에 보물들 훔치고 갑니다
그래서 움켜 쥐나봅니다
귀중한 시.
수퍼스톰님의 댓글
부족한 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빚으십시오.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