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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천지인 프로그램 구축…
▶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천지인 프로그램 구축하기
천지인 프로그램 구축하기 정동재
좀 손해 보면서 살라셨다는 아버지 유언 한 자락 꺼내놓으며 마른 담배 연기 피우는 얼큰해진 얼굴의 앞 동 조 씨 승강기를 빠져나와 모니터 앞 엉덩이 들이고 앉아 영혼 프로세서가 오늘은 인간 정신에 대하여 메모장에 프로그래밍 중이다 유구한 세월 쌓인 한민족의 정신이야말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신 사양의 프로그램인 듯했다
기근에 콩 반쪽도 나누었으며 왜적에 대항해 목탁 내팽개치고 죽창 손에 들었으며 행주치마에 돌멩이를 가득 담아 날랐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살만해졌다고 조강지처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놈은 진짜 사내도 아니라 했다 언제 적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 했다 바이러스 근접조차 허용치 않는 프로그램 구축이야말로 한평생 내 영혼의 소명 임금은 임금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선생은 선생답고 프로그래밍할 내역 대략을 머리글부터 적어보니 지상낙원 구축은 결코 요원한 일만은 아닌 듯했다 영원한 세계의 시작은 나로부터 메모장 마지막 구절을 적자 사방이 온통 환해졌다
평론: 영혼의 모니터에 띄운 '홍익인간'의 소스코드
■ 디지털 언어로 번역된 5천 년의 '정신 사양' 시인은 현대적인 '프로그래밍'의 수사학을 빌려 우리 민족의 정신 유산을 재해석합니다. 유구한 세월 쌓인 한민족의 정신을 '지구상 최신 사양의 프로그램'으로 명명한 대목은 가히 천재적입니다. 나눔(콩 반쪽), 저항(죽창과 행주치마), 의리(조강지처), 예우(선생님의 그림자)라는 파편화된 역사적 장면들이 시인의 메모장 안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거대한 알고리즘으로 통합됩니다. ■ '답다'는 것: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강력한 백신 시인이 구축하려는 프로그램의 핵심 엔진은 '답다'는 가치에 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선생은 선생답고." 이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시인의 영혼 프로세서를 거치며 현대 사회의 온갖 도덕적 해이와 이기주의라는 '바이러스'를 근절하는 가장 강력한 보안 프로그램으로 재탄생합니다. 각자가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지상낙원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소스코드임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 조씨의 담배 연기에서 '나'라는 우주의 시작으로 시는 앞 동 조 씨의 얼큰한 얼굴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하여, '영원한 세계의 시작은 나로부터'라는 거대한 깨달음으로 수렴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인 '손해 보는 삶'은 프로그램의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 시스템을 살리는 고귀한 희생의 데이터였습니다. 메모장의 마지막 구절을 적는 순간 사방이 환해졌다는 묘사는, 개인의 각성이 곧 우주의 밝음(明)으로 연결된다는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 지상낙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실행 파일 시인은 선언합니다. 지상낙원은 요원한 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한 최신 사양의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삭막한 아파트 승강기를 빠져나와 영혼의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는 시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우리 안의 '성스러운 설계도'를 다시금 목격하게 됩니다.
총평 :인류의 정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사자후 이 시가 내포한 시제의 진정한 의미는, 한민족의 도덕적 원형질을 디지털 시대의 문법으로 완벽히 복원해냈다는 데 있다. 시제 ‘천지인 프로그램 구축’이라는 소스코드는 천손민족으로서 위로는 천제(天祭)를 받들어 하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화려명려(華麗明麗)한 금수강산의 은혜에 감사하며, 음식 한 가지에도 깊은 장맛을 빚어낸 우리네 삶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하물며 그 인심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대한민국의 정(情)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진경(眞境)의 세상을 오롯이 증명한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지상낙원의 시스템을 가동하는 법을 명징하게 제시한 수작을 내놓았다. 이 시는 영혼의 공학자가 써 내려간, 천지인(天地人) 모두를 살리는 위대한 선언문이다.
별점:★★★★★★(6/5)
정동재 시인의 작품 세계 요약
등단: 2012년 계간 《애지》 주요 시집: 《하늘을 만들다》 《살리는 공부》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