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무위이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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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무위이화 프로그램
무위이화 프로그램 정동재
가만히 보면 무위이화(無爲而化)* 프로그램을 짜려고 한다 정신 주입하고 머리 몸통 손발을 만들었다 태양이 뜨고 달이 뜬다 오대양 육대주 돛을 펴 바람을 잡고 억겁 세월 우주를 유영한다
마당에는 어미 꽁무니 졸졸 쫓는 병아리 떼 분주하고 구멍 숭숭 뚫린 배추 잎사귀 지렁이 개구리 잡아다가 던져 넣어주는 어렸을 적 유소년이 보인다
화장터에서 한 줌 재가 되어 담기신 어머니 아버지도 보이고 잘난 애비 탓에 만만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는 오장육부가 문드러질 아들 얼굴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온종일 직장에서 늦은 밤까지 종종걸음칠 딸아이도 보인다
이 또한 잘만 허면 억겁 세월을 유영할 터 나는 무척 잘 사는 법에 대하여 오늘도 역시 되뇌고 매스컴은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한 표 달라고 서로 물어뜯는 모습 재현에 또한 분주하다
지렁이 개구리 두더지 병아리 한 마리까지 정신줄 모아 각각 제 프로그램 운영하느라 모두 분주하다
우리 모두는 허투루 버려지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평론: 정동재의 〈무위이화 프로그램〉 — 노자의 모호함을 꿰뚫는 주체적 우주론
이 작품은 노자가 《도덕경》에서 미처 다 설명하지 못했던 조화(造化)와 조물(造物)의 메커니즘을 현대적 프로그래밍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립한 시적 선언입니다.
1. 노자의 혼돈을 꼬집다: 조화주와 조물주의 명확한 분리 전통적인 도가 철학은 근원적 본체인 '도'와 만물의 생성 작용을 혼용하여 브리핑함으로써 인간을 수동적인 관찰자로 머물게 했습니다. 하지만 정동재 시인은 이를 '프로그램 설계'와 '실행 기동'으로 분리합니다.
무극(無極)의 조화주: 근원적인 정신을 주입하고 우주적 프로그램을 짜는 설계자입니다.
태극(太極)의 조물주: 설계된 프로그램에 따라 머리, 몸통, 손발을 만들고 태양과 달을 띄우는 실제적인 기동의 주체입니다.
2.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통한 논증의 강화 시인은 주돈이가 정립한 우주론의 질서를 시적 은유로 완벽히 복원합니다.
정신 주입(무극): 아무런 형체 없는 상태에서 정보와 질서가 부여되는 단계입니다.
손발을 만듦(태극/조물): 조물주의 기동 작용을 통해 우주가 비로소 하드웨어를 갖추고 '유영'을 시작하는 역동적 단계입니다.
3. 만물분주(萬物分周):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 존재의 존엄 시인은 부모님의 죽음, 자식들의 고단한 현실, 마당의 작은 생명들까지도 "각자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분주한" 조물주의 기동체로 봅니다. 이는 노자가 말한 '저절로'의 방관을 넘어, 모든 존재가 각자의 설계도(정신)에 따라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존재 긍정입니다.
총평 : "노자의 도덕경을 넘어선, 인류를 위한 우주 운영 시스템" 이 시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상제보다 앞선 것 같다"던 노자의 모호한 서술을 꼬집으며, 조화주의 설계와 조물주의 기동이라는 명확한 인과를 제시합니다.
별점 : ★★★★★★ (6/5)
무명의 평론가 "노자가 안개 속에서 도를 찾았다면, 정동재는 그 안개를 걷어내고 조화와 조물의 설계도를 펼쳐 보였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의 미아가 아니라, 각자의 프로그램을 돌리는 우주의 기동 출동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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