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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헤겔 앞에서 칸트의 …
▶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헤겔 앞에서 칸트의 도덕 비판
헤겔 앞에서 칸트의 도덕 비판 정동재
칸트의 안녕 여전한 풍문에 빈속 달랠 위로의 말 찾는 귀가 쫑긋 세워졌다 억지로 차려놓은 듯한 말 잔치 그가 세상에 발표했다는 도덕적 시민 사회 건설* 이야기는 시작부터 뚱딴지같은 소리다
<칸트 왈> 1. 자연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우연과 맹목의 지배만 있을 것이다. 2. 우리는 그러한 우연과 맹목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 3. 그러므로 자연에는 목적이 있다. 그의 말 대접은 자연과 친구이거나 애인은 전혀 들을 필요도 없는 말
코스요리처럼 이어진 그의 말 잔치 4.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은 쓸데가 없는 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다. 5. 인간은 자연에 의해 창조되었다. 6. 그러므로 자연의 흐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역사 역시 어떤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특정한 목적을 향한다. 'Reason'이라는 오역의 이성주의 그리고 목적을 내세운 모든 것이 필연이라는 그의 숙명론 앞에 염화미소 부처께서 인과의 법칙으로 서 계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통했다는 전우치라는 그림의 떡이 CPU처럼 그려진다
7.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과 의지의 자유를 준 것 역시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인간 역사는 이성을 사용하여 의지의 자유를 최대로 확대시키는 것, 즉 여러 사람의 자유가 공존을 이루는 시민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대미를 장식하려 한 그의 메인 요리 이참에 헤겔마저 불러들여 격물치지까지 조언 한 상 차려 건네야 할 것 같았다 처마 끝 풍경소리에 무릎 위 손이 절로 장단 맞춘다
513년**마다 성인을 내려 세상을 성스럽게 만들려 했던 역사의 현장, 일월(日月)을 승강시켜 일 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사람 걱정뿐인 빼곡한 하늘의 일상 적힌 코앞 벽에 걸린 달력 해와 달 손잡고 걷는 길 그 도(道)와 산책로에 펼쳐진 은하수까지 모두를 살리시어 밝고 밝다는 명명덕(明明德) 오월 따사로운 햇살 때론 매서운 태풍과 폭설 앞세우는 고명(高明)하신 도덕군자 우주*** 자연을 보며 천상 문명 고스란히 본떠 인간의 윤리 도덕과 철학 세계 구축하려는 지구의 문하생들 잔칫상에 그 도덕 한 상 제대로 차려내지 못한 그들에게 도덕을 형상화시킨 정음 정양의 기동 작용 태극기 한 쌍 건네주고 싶어졌다
지상천국 건설은 걱정도 하지 마시라! 완성된 사람 농사에 목매는 건 언제나 먼저 자연이고 하늘이었다고 일테면 절대정신이며 자유의지였다고 밥상머리에서 말 한마디 꼭 집어 숟가락에 얹어 떠먹여 주고 싶어졌다
*칸트의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 맹자, 조철제 님의 전교 *** 15진주 우주 만들기: 정동재의 시
평론: ‘Reason’의 감옥을 부수는 인과(因果)의 사자후
■ 'Reason'이라는 거대한 오역: 한국 지성사의 비극적 단절 시인은 서구 근대 철학의 핵심 키워드인 ‘Reason’을 ‘이성’으로 번역하며 발생한 치명적인 왜곡을 정조준합니다. 원인과 이유를 뜻하는 이 단어가 관념적인 ‘이성’으로 박제되면서, 서양 철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유희로 변질되었습니다. 시인은 이 ‘오역의 사건’을 한국 문학 성장을 가로막은 전형적인 퇴보로 규정하며, 서구 철학의 오만을 단칼에 베어냅니다.
■ 칸트의 목적론을 압도하는 3,000년 전의 ‘인과(因果)’
칸트가 자연의 목적을 증명하기 위해 차려낸 복잡한 논증들 앞에서 시인은 일갈합니다. "이미 인과법칙 안에 원인(까닭)과 결과가 다 들어있거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동양에는 인식론이 없다고 깔보는 이들에게 시인은 '격물치지(格物致知)' 한 단어로 응수합니다. 자명한 우주의 질서를 두고 '이성'이라는 안경을 쓴 채 목적을 찾아 헤매는 칸트의 모습은 시인의 눈에 그저 '지구의 문하생' 수준의 재롱일 뿐입니다.
■ 513년의 주기와 일월(日月)의 눈물
시인의 시선은 차가운 도덕률을 넘어 513년마다 성인을 내려 세상을 정화하려 했던 천지의 고심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도덕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만물을 살리는 ‘명명덕(明明德)’의 찬란한 빛 자체입니다. 해와 달이 손잡고 걷는 그 산책로가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할 도(道)임을 시인은 달력을 보듯 선명하게 그려냅니다.
■ 숙명론의 쇠사슬을 끊는 ‘기동 작용’의 생명력
모든 존재를 필연이라는 차가운 숙명에 가두려 했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시인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기동 작용’을 인류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정지된 관념 속에 박제된 도덕이 아닙니다. 365일 해와 달을 돌리며 '사람 농사'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우주의 현재진행형 에너지, 즉 살아 움직이는 신성(神性)의 영역입니다.
천지우주의 운행과 그 길인 운로(運路),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운명은 '숙명론'이라는 피할 수 없는 명제를 우리 앞에 던집니다. 이것이 바로 조화주(造化主)가 정한 조화정(造化定)의 실체이자 숙명론의 본체입니다. 그러나 이 숙명은 결코 수동적인 포기가 아닙니다. 우주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음과 양의 가동이 치우침 없이 맞물리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세상이며, 어떠한 사곡됨도 없는 바름만이 통용되는 경지인 '우주진경(宇宙眞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지의 성경신(誠敬信)은 관념적인 유희가 아닙니다. 만물을 살리는 도(道)와 덕(德) 그 자체이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일월(日月)의 운행입니다.
성(誠): 무극과 태극, 그리고 희역(368일), 주역(365일), 정역(360일)이라는 우주 도수(度數)의 변화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성을 위해 운행을 지속하는 천지의 무궁한 성실함입니다.
경(敬)·신(信): 해와 달이 정해진 궤도를 지키며 만물을 살게 하는 엄정한 법도입니다. 이는 온 우주의 생명이 천지우주의 운행을 보고 하늘을 신뢰하는 ‘믿음’이라는 덕성을 가슴에 형성하게 하는 불변의 운행법이며, 스스로의 의지로 진리를 체득해 나가는 과정이자 하늘이 공들여 짓는 ‘사람 농사’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이 일월의 쉼 없는 운행에 자신의 삶을 합일시킬 때, 숙명은 비로소 자유로운 우주적 삶으로 승화됩니다. "숙명은 갇힌 감옥이 아니라, 일월의 쉼 없는 성실함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태극기 속에 담긴 우주 순환의 원리처럼, 365일의 시간을 넘어 360일의 정역(正曆) 시대로 우주 도수가 돌아가듯 우리 또한 그 운로 위에서 사곡됨 없는 '바름'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관념 속에만 머물던 영원한 가치는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천적 도덕이자 정신이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간하는 역동적인 생명력의 실체인 것입니다.
■ 지상천국, 하늘이 지어온 ‘사람 농사’의 결실 시의 대미는 혁명적인 주객전도입니다. 지상천국 건설은 인간의 빈약한 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지상천국 건설은 걱정도 하지 마시라! 완성된 사람 농사에 목매는 건 언제나 먼저 자연이고 하늘이었다." 결국 도덕과 문명이란 인간이 쌓아 올린 유희가 아니라, 태초부터 ‘사람 농사’를 위해 신산고초를 겪어온 하늘의 지극한 정성이 맺은 열매인 것입니다.
총평 :천지의 숨결로 쓴 철학적 대서사시 "인간의 오만한 이성을 부수고 그 자리에 '하늘의 정성'을 채워 넣은, 가히 천지를 뒤흔드는 비평적 호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