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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8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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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보리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3회 작성일 17-01-23 08:47

본문

영하 8도라고 했다. 오늘이라는 공간의 온도가,

 

아들이 잘 입지 않는(아들은 키가 180이 넘고 덩치가 크다) 털 달린 야상을 빌려 왔다.

옷을 입는다기 보다는 덮을 수 있는 옷이 필요한 것 같아서이다.

베릿한 아들 냄새가 나는 옷 속에도 몇 겹의 옷을 겹쳐 입고 새벽 배달을 나섰다.

나는 아무래도 체질적으로 가난한 것 같다.

새벽에 마루문을 열문 얼마나 추웠던지, 와락 마루를 향해 달려오는 새벽 바람이 나는 좋다.

아무래도 우주는 장엄한 숲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둠이 오면 저 반짝이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이다. 나는 열정에 찬 늙은 지도자가 젊은 혁명가들의 눈을 한 사람 한 사람

마주치듯, 안구에 에너지를 실어 별들 하나 하나와 눈을 마주친다.

사람 인체의 성분과 행성의 성분이 같다니, 그들은 나의 형제들이다. 나는 별의 자손이며

별의 조상이다. 이 무상(無相)의 우주에서, 무엇인가 생겼다는 것, 생긴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혁명이다. 나는 무상의 교리를 믿지 않는다. 찰라를 있어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 내부를 열고 또 열어 초미립자의 단계에서 무상이 밑천이라 할지라도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인생이나 우주나 허무 할 것은 없는 것 이다. 색은 즉 공이 아니라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이다. 한번 있기 시작한 것은 사라질 수가 없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했으니, 나는 죽어서 별이되고, 별이 되어 다시 꽃을 피우고, 풀을 키워 끝없는 생명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다 쓴 베터리를 다시 충전하듯, 내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 한참을 쉬며 다시 회복되고, 이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유성이 되어 다른 별의 품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우주가 다 할 때까지 나의 성분들은 순환해

가는 것이다. 나만 생각하면 나는 죽을 수 있지만 나를 생각 밖으로 버리면, 우리, 별의 자손들은 영원히

이곳 우주에서 존재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무엇이 허무한 것은 욕심 때문이다. 별보다 제 아집이 크기 때문이다.

 

너를 안으면 아랫목에 묻어 놓은 밥처럼 따뜻하다. 그 열, 묵지근하게 아름을 채워오는 형체, 마주보면 웃음 나오는

표정, 눈빛, 그건 무상의 요술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며 실제이며 온전한 별이다.

 

왜 그것은 조화처럼 시들지도 변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프면 아픈데로 슬프거나 화가나면 화가나는데로 뇌는 어떤 형태의 열과 빛과 에너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있다, 내가 있다 하는 표류된 사람들이 흔드는 흰 옷자락 같다.

 

오늘은 영하 8도의 행성에 내가 있을 것이다.

 

출근해야 겠다.

춥겠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고 남편은 나를 집어 던지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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