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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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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8회 작성일 26-03-05 06:23

본문

​멧돼지 




 봄햇살이 오랜만에 대지에 잔잔하다. 금방이라도 밭둑에 봄풀이라도 파릇할 것 같아 담장 넘어 고개를 주욱 빼고 그제 밭머리에 물고랑을 삽으로 튼 둑을 바라본다. 정월 대보름이 엊그제이니 이제 봄꽃도 멀지 않으리라. 마당 축담에 앉아 햇살에 조우는 눈길이 시려워지자 문득 선영의 산소가 생각이 났다. 해가 바뀌어서 한 번 들린다는 것이 게으른 몸에 나태한 정신이 늘 다리를 붙들어 차일피일하다 그래 자꾸 몸이 무거워지는데 얼마나 자주 뵈올까 하며 다잡는 몸이 호기롭게 일어선다.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지며 설명절에 쓰지 않았던 조율이시를 조금씩 챙기고 술잔 세개,저분 세조,접시 다섯 개, 따지 않은 제주 한 병을 큰 봉투에 담는다. 향은 요즘 산불이 심하다고 난리를 치니 한참을 들고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마당을 나서며 대문에 기대어 겨우내 보초를 서던 삽자루도 하나 챙기고 오랫만에 부는 향긋한 봄바람을 온몸에 안으며 대문을 나선다.

  선영을 올라가는 입구에 도열한 대나무 행렬이 시퍼렇게 봄빛에 반짝이고 산속에 있는 400년 된 연못가에 봄풀이 제법 송송하다. 산중턱을 바라보며 작년에 깔아 놓은 자갈길을 자박자박 리듬에 맞춰 초봄의 숨결을 킁킁거리며 올라간다. 길가에 썩어져 떨어진 꿀밤나무 잔가지들을 발로 툭툭 치우며 길을 내고 겨우내 쌓여진 낙엽을 이불처럼 걷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청아한 향기의 산공기가 가득하고 이윽고 숨이 턱에 걸려 헐떡거리며 겨우 고개를 들면 거기 선영이 어서 오게! 하며 인자한 모습이 따듯한 품처럼 좌정하고 계신다. 그러면 반가움에 혹은 정월에 아이들 모두 데리고 오지 못한 불경 때문에 저절로 숙여진 고개를 안고 上位에 앉아 계신 13대조님께 먼저 절을 올린다. 그러고는 바로 밑에 달려 있는 종가묘터에 내려와 묘제 진설 전에 묘의 상태를 둘러보는데 어랍쇼! 왼쪽 상위에 있는 조부의 묘 옆구리가 파헤쳐져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년 멧돼지의 난행으로 선영의 큰 산소들이 훼손 되고 여간 고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산소들은 수년을 피해가 없어 요놈들이 종가 산소터를 아나 하며 요행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런 사단이 난 것이었다. 그렇찮아도 산을 오르며 금방 지나간 듯한 멧돼지의 발자취를 보고 은근히 걱정을 하였던바 그야말로 고놈이 무엄한 불경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순간 맑은 산공기에 살기로운 눈빛이 돌고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고요한 정적만 도망간 멧돼지의 행방을 숨겨준다. 요놈들이 사람들에게도 달려든다 하니 산속에 홀로인 허약한 노인이 지레 겁을 먹었는지 느닷없이 삽자루를 돌모서리에다 땅땅 내려친다. 멧돼지는 흔적이 없다.

  파헤쳐진 조부의 옆구리를 섬섬히 메꿔주고 삽으로 다져가며 잔디를 심고 하니 오전의 해가 중천에 올랐다. 땀을 훔치며 가지고 온 제수들을 상석에 가지런히 올리고 저분을 올리며 맑은 술 두잔씩을 올려 흠향을 권해 올린다. 부복한 세월은 시절을 잊었고 고개를 든 산야는 미래의 희미한 그림자에 문득 흐릿한 동공은 저절로 시울에 젖어든다. 아직은 앙상한 나무가지들, 저 나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 백년을 이 터를 지켜주련만 누가 나서서 이 산소를 지켜 나갈 것인가에 머물면 암담해서 가슴이 답답하다. 맑고 향기로운 제주 한잔을 목구멍에 부으며 정신을 차려 보지만 자꾸 정신은 혼미해지는 건 무거워진 세월 탓일까. 홀연히 산소 곁에 풀숲에서 푸드득 꿩 한 마리가 날아 올랐다. 금빛의 긴 꼬리가 햇살에 번쩍이며 길게 날아서 산속으로 사라졌고 가뭇한 시선은 허공에 멈춰 빈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매년 멧돼지의 횡포가 심해지고 어떤 묘는 아예 흔적도 없이 파헤쳐져 묘의 형상이 사라진 집도 있다. 그러다 관리하던 우리네 세대마져 하나 둘 쓰러져 가니 실묘의 형태로 사라지는 묘가 시대의 아픔으로 진행 되고 있다. 후손들이 관리하지 않으니 어떤 뾰족한 수가 없다. 이 시대에 돈자랑으로 화강암을 깨고 오석을 다듬어 호화롭게 꾸며서 만든 아성 같은 묘들도 몇년이 지나면 후손들이 오지 않아 다 공해물처럼 남는다. 이런 걸 짐작이나 했는지 시골 산골의 멧돼지들이 나서서 산소를 허물어 대는 게 아닌가 하고 희떠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찾아 오지 않는 후손들을 위한? 멧돼지들의 시위가 연일 산속에서 묘를 파헤치고 있다. 후손들이여! 누가 그대를 이 세상에 내어 놓았는가? 한 번 쯤 시간이 비면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산소에 와서 엎드려 내 아이들을 한 번쯤 생각하라!

  덕동호의 둘레길은 언제나 맑고 상쾌하다. 그 호수변을 달리는 마음은 언제나 유쾌하다. 선조를 만나고 오는 길은 언제나 성현을 뵈온 것처럼 뿌듯하다. 왜냐하면 오늘의 내가 있다는 걸 명확이 보여주는 하늘의 증거이기도하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계 보 몽* 詩人&隨筆家님!!!
  故鄕에 蟄居하시며,先靈을 管理하시는 "계보몽"任..
"계보몽"任의 隨筆을 對할때`마다,孝心깊은 任의 香氣를..
 本人도 今年 설날에는,父母님의 茶禮를 本人다니는 寺刹에서..
 祖上님들의 先靈에는 罪悚하지만,오는 寒食日에 가기로 하고 하고..
"계보몽"隨筆家님!"任"의 글월을,感動으로 攝獵합니다!늘,康寧하세要!^*^

계보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 안녕하시죠?
10여만평도 넘는 선영에 널려 있는 산소들
매년 묘제철에 참배행사가 초겨울에 있어 아직은 가지런하기는 합니다만
이제 봄 여름이 지나면서 산풀의 숲이 되겠지요
성묘겸 다녀왔습니다만 겨울에는 멧돼지가 먹이 사냥때문에 산소가 엉망이 되지요
혀를 차 보지만 대책이 없지요
제공도 여기저기 나이가 먹어 허무러져 가고 있고, 마음도 따라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 억장이 무너집니다
사람이 없으니까요

안박사님 늘 건안하시고 만사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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