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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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세월
째깍째깍 잠의 꼬리가 사라져 가면 머리 맡에 아스라히 멀어져 간 시간이 도사리고 앉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아직도 새벽의 등고선이 밑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어두컴컴한 호랑이의 시간에 대지를 어슬렁거린다. 무슨 절실한 그리움이 그리 많다고 무슨 애타는 기다림도 없는데 속절없이 깨어난 寅時의 곡소리는 나날이 깊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습관대로 살다가 사라져 가지만 수면의 습관도 도무지 고칠 수가 없어 알약 하나에 매달려 사는 세월이다.
눈을 감아도 마음은 한사코 캄캄한 절벽을 밤새 오르기도 하고 해파리처럼 늘어진 몸뚱어리는 아득한 사해의 바다에 둥둥 떠다닌다. 이따금 생각이 내 골을 파고들어 뒤통수에 앉아 처연히 잠을 바라보기도 하고 귀곡성 같은 환청이 축제처럼 이어진다. 그러다 마침내는 뜨거운 선혈이 코를 타고 주르륵 흘러 내리고 베개닛을 흥건히 적시고야 떠다니는 영혼이 돌아와 일어나 앉는다. 폰을 두드려 찡그려 확인하는 시간은 늘 새벽 3시 언저리다. 지독히 낭패한 무거운 눈꺼풀은 또 하루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하루밤을 이겨내는 것이 참 힘들다. 고비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잠은 진정 없는 것인가. 절망 같은 수면이 원수처럼 누워 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월이다. 예전에 남대문 시장에서 수제 가방을 도매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이 도매시장은 남들이 다 꿈나라로 가는 저녁 10시쯤에 가게를 열어 새벽 6시쯤에 가게문을 내리는데 친구는 같이 술을 먹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주섬주섬 서둘러 일어서곤 하던 기억이 있다. 전국의 소매상들이 그 시간에 몰려오는터라 어쩔 수 없이 야간근무가 일상이 된 친구였다. 참 활달한 친구여서 매사에 활동적이고 쾌활하여 살가운 이웃 친구였다. 젊음의 한 때를 같이 한 그리운 친구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30중반의 어느 가을날엔가 친구가 죽었다는 비보가 친구의 마누라를 통해 날아왔다. 새벽에 가게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옮겼으나 속수무책으로 유언 한마디 남기지도 못하고 졸지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돌연사라는 것이었다. 조문객도 없는 조촐한 장례식장에서 맥없이 흐느끼는 마누라의 입에서 장기간의 수면부족으로 급성심장마비로 인해 쓰러졌다는 말이 독백처럼 흘러 내리고 있었다. 수면 부족으로 심장마비라 그때는 몰랐다. 그져 희한한 일도 다 있네 하는 정도였다.
늙으면 대개 수면의 시간이 자연적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 남은 생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몸이 이곳저곳 무너지니 급격히 찾아드는 자괴감 그리고 둘이 있어도 외롭고 고통스런 삶들이 점철이 되어 밤을 괴롭힌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개선을 하고 수행을 하고 실행을 해보지만 결국 늙음이 원흉이 된다 다 자연의 이치이건만 그걸 극복하려드니 인간은 괴롭다. 그져 그러려니 하며 살자 하지만 사람은 천성대로 살아간다. 세월을 거스르고 순리를 거슬러서 살기에 고통이 따르는 것 같다. 물 흐르듯이 살고 싶지만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 아는 이는 고령인데도 누우면 꼬꾸라져 새벽까지 꿀잠을 잔다고 한다. 내가 늘 부러워마지 않는데 문득 수면복도 타고나는 것일까에 이르면 참 나는 지지리도 복도 없는 늙은일세 하며 자책을 한다. 그래 오늘은 봄햇살이라도 듬뿍 쬐어서 삭신을 비타민에 달구어 침상에 노구를 눕히어 잠 같은 잠을 한 번 초대해 보자. 다짐이 바윗돌 같지만 마음은 공허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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