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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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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96회 작성일 26-03-16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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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눈깨비




  아침 햇살이 구름사이로 빗금을 치더니 느닷없이 차디찬 하늘에 진눈깨비가 흩어졌다. 제법 어깨를 후드득 때리는 듯 내리는 진눈깨비는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이 아침부터 객기 부리듯  허공에서 흩뿌려져 내렸다. 오래전에 종택의 중창비때문에 부탁한 그 귀하여 구하기 어렵다는 烏石이 멀리 단양에서 석재상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회장님과 함께 석재상이 있는 외동으로 향했다. 碑文이 완성 되었으니 이제 돌중에 귀족 같은 烏石에 비문을 새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부푼 꿈을 안고 빗속에 들판을 달려 지역에서 소문난 석재명장이 있는 석재공장으로 달려갔다.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사장이 안내한 그곳에는 과연 산처럼 생긴 아담한 오석이 먼길에 피로함도 없이 번듯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무게가 2톤도 족히 넘을 돌을 이리저리 쓰다듬어가며 수백 년을 우리와 함께할 선조님 같은 자태라 흥감하고 정다운 눈길로 위로 훑고 아래로 훑으며 한참을 감탄해마지 않았다.

  석재상 사장이 오석을 놓을 자리를 현장답사를 하고 싶다 해서 셋이서 차를 나누어 타고 종택으로 달리는데 그냥 그쳤으면 하는 진눈깨비가  눈치없이 차창을 때리며 그칠 기미가 없었다. 마음은 환희로운데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먼데 토함산 줄기에 걸친 비구름을 보며 속으로 참 날씨가 받쳐주질 않네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산을 나누어 쓰고 비를 설치할 곳에 줄자로 측량을 하기도 하고 기단의 높이를 계산하여 바닥에 준설할 기단의 크기도 어림잡아 가며 새로 이사 올 손님의 집터를 정밀하고 섬세하게 공손한 마음으로 영면의 터를 잡는 것이었다. 앞으로 수백 년 동안을 맞은 편에 있는 300년도 넘은 二樂堂정자와 함께할 종택의 창건비가 영원불멸하기를 기원에 마지 않으며 허물어져 가는 향념을 다짐해 마지않았다.

  일찌감치 가벼운 저녁을 헤치우고 차 한 잔을 들며 보람찬 하루의 뿌듯한 생각 속에서 공상에 빠져 있는데 돌연히 폰의 벨소리가 유난히 방정맞게 울리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에 누구인가 하고 화면을 보니 회장님의 전화인데 회장님의 아내인 숙모님의 목소리였다. 예 회장님! 하는데 거기 숨 넘어 가는 쉰목소리의 숙모의 다급한 목소리가 하얗게 질려 폰에서 진눈깨비처럼 흩어졌다. 흩어진 단어들을 조합해 가며 경청을 하고 있는데 워낙이 다급해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한밤중에 홍두께 같은 소린가 하고 갸웃하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용을 추적하고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워낙이 마른날에 날벼락 같은 일이라 쉬이 무슨 말을 할 지도 몰라 한 참을 말 없이 사색이 되어 갔다

  낮에 종택에서 내가 작성한 중창비문을 이메일로 석재상에 보내야 하는데 종택의 컴퓨터가 오늘따라 말을 듣지 않아 몇 번을 시도 했으나 짜증을 내다가 포기를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회장님이 아들내미가 시청에 근무하고 있으니 내가 알아서 함세! 하고는 비문원본을 주섬주섬 봉투에 넣더니 아들을 만나러 시청으로 가셨다. 이것이 사단이었다. 회장님이 급한 마음으로 시청앞 건널목을 느릿느릿 길을 건너는데 어떤 정신 나간 운전자가 백주 대낮에 노상에서 그대로 회장님을 밀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혓바닥이 오구라들기 시작했다. 깨어보니 대학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숙모님의 대강의 줄거리였다. 나 보다 체력이 우월하여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그가 졸지에 남은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모두가 내 책임 같아 눈시울이 젖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던 노인이 갈팡질팡 하고 있다. 워낙이 강철 같은 몸이니 툭툭 털고 일어나시길 빌어 마지않는다. 하늘에 진눈깨비는 멎었으나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갈 마음만 바쁘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물가에아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고~
이 일을 어째예~
백주대낮에 건널목을 건너시다가 큰일을 당하셨네예~
차는 편리함에 환영을 받는 물건이지만 사람이 또 많은 피해를 ~~~~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을 앞두고 속상하시고 걱정되시겠네예~
병원 계신 회장님의 빠른 완쾌를 축원 드립니다예~~~~  _()_

계보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계보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아님 안녕하시죠?
그렇잖아도 병원에 종일 있다가 지금 들어 왔네요
다행이 상태가 좋아져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어 천우신조라 생각하고
일반 병실로 옮겨서 견디고 계시지요
잠시 기절로 공황상태가 되었다 깨어난 것이라 생각보다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더군요
뇌에 이상이 없다니 안도의 숨을 돌립니다

완쾌를 기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아님도 얼른 쾌차하시길 기원하는 바입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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