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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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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부엌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8회 작성일 19-07-29 15:18

본문

풀과 나 / 부엌방

 

봄은 봄으로 보여지나 풀로 오는 것 겨울은 겨울로 가버리나 풀로 가는 것

가을도 가을로 오는 것이나 풀로 오는 것 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풀로 있는 것

풀로 보이는 것으로 계절은 안긴다. 꽃으로 온다고 해도 나는 풀로 온다

꽃으로 간다고 해도 나는 풀로 간다. 꽃을 떨어진다 해도 한 잎에 풀잎이 떨어진다

꽃이 썩는다고 해도 나는 풀잎이 썩는다. 풀은 파랗지 않다 풀은 녹색도 연초록도

아닌 풀은 그냥 풀이다. 풀은 하얗지도 않고 검지도 않다 정해진 색깔이 있다면

풀이 아니다 그래서 풀은 자유자재로 흔들리고 눕고 자유를 즐긴다

풀처럼 견고하고 풀처럼 유연하고 풀처럼 향긋한 것은 없다 풀은 말하지 않고

듣는다 풀 속에 내가 있고 풀 속에 님이 있었으며 새도 바위도 산도 계곡도 풀 없이

는 소리를 못 내고 풀 없이는 바람도 불지 않으며 풀향기에 모기마저 모여든다

풀잎처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는 여름이다. 풀처럼 깊은 밤을 새우고 싶다

풀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들어준다. 기나긴 밤이든 비 오는 밤이든 새가 울든 천둥이

치든 풀숲에 숨이 있고 모든 생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언덕도 벼랑도 기댈 수 있는

모든 곳에 풀들은 손짓하고 부른다 그 속에 풀은 잠들고 있고 노래도 할 것이고

물도 드는 것이다. 행복의 웃음은 배어 나오지 않는다. 물드는 것이다. 풀물처럼

닦이지 않는 피처럼 사랑처럼 풀은 흔들려지고 부른다. 앉아보면 느낄 수 있다 앉아

반듯이 흔들리는 그들을 보면 잡고 싶은 풀잎의 끝을 나는 앉아야 그들이 보인다고

풀잎을 손등으로 훑어 촉감을 들인다. 앉아야만 풀이 아니고 그들이 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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