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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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여정』 ④ -연작 시소설중 발췌-
〈대나무 숲의 말들〉
―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것들, 바람에 실린 속삭임
나는 종종 그 숲을 걷는다.
대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는 그 길,
틈이라곤 없는 듯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안은 비어 있다.
나는 그 숲에 들어서면,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누구도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다.
나만이,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대나무는 말이 없다.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그 침묵이 흔들린다.
그건 속삭임 같고,
마치 오래전에 했어야 했던 말들이
풀잎 사이를 스치듯 내게 되돌아오는 소리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누군가의 말,
내가 내뱉고 후회했던 한 문장,
혹은 끝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의 한 구절—
그것들이 대나무 사이를 흔들고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오래된 편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편지의 내용은 없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명확히 느껴진다.
말은 종종 그 자체보다,
그 말이 사라진 뒤에 남는 여운이 더 큰 진실을 말해준다.
나는 그날,
한 그루 대나무 앞에서 멈췄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내가 나에게 오래 전부터 불러오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내가 부르지 않으면,
이 숲 어디에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대나무가 왜 빽빽이 모여 서 있으면서도
숲속이 이렇게 고요한지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는 대신, 말이 되기 전의 감정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숲은,
말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머무는
하나의 ‘빈집’이 된다.
나는 그 빈집을 걷는다.
마치 내 안을 걷듯이,
나는 숲을 지나면서
사라졌지만 끝내 전해진 말들을 듣는다.
✨ 독백:
말은 입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잉태된다.
나는 그날 대나무 숲에서
말을 잃은 자가 아니라,
말을 품은 자가 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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