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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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난 카메라라면 지긋지긋해. 이가 갈려. 생전 그런 거 안 가질 거야."
'카메라와 워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째서 그가 카메라를 싫어하는지 사무치게 이해한다.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평생에 걸쳐 찾는 것은 그뿐인지도 모르겠다. 금주? 금연? 그런 것쯤 일평생이 아니라 곱절이라도 지킬 수 있다. 왜냐한 까닭인즉 나는 이미 애초에 평생을 담보로 저주를 걸어본 경험도 반 강제로 영영 기회를 박탈당한 적도 있기 때문일 거다.
어릴 적 비교적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소리를 하느냐 격분할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내 비애를 감출 생각이 전연 없다.
아아.. 그때 그 장난감 칼...
스펀지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 싸구려 장난감이... 왜 내 어머니로 하여금 너무 비싸다고 끔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바가지가 쓰여있었을까..
왜 어머니가 그토록 매정하게 날 타이르게끔 만듦새가 형편없었나.. 나는,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결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 장난감 칼이 그렇게 갖고 싶지는 않았고, 어쩌면 어머니만큼이나 그 장난감에 내가 얼마나 빨리 싫증이 나버릴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 칼에 그토록 조급증이 나고 어머니에게 애원했던 것은, 그때가 아니라면 다시는 그 조잡한 장난감 칼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들고 허공을 가르는 손짓과 즐거움, 장난감을 사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어리고 조악 한한 마음 모두, 그때 단 한 번의 거절을 겪고 나면 두 번 다시 없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장난감 칼이 내게 소중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떠한 식으로든 영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영원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어쩌면 지금보다는 덜 강박적이고 영원에 대해 비뚤어진 시선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평생을 걸고 악마와 맺은 계약조차 영원한 것은 없다고 둘러댈 정도로 뻔뻔하고 유연한 자유민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나는 직감대로 두 번 다시 그 장난감 칼을 탐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다는 환상을 쫒게 되었고, 끝내 영혼에 악마의 저주를 새기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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