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천(文川)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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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文川)의 세월
경주 남쪽 금오산 골짜기에서 玉水의 한 방울 한 방울로 시작하여 첩첩산골 작은 골을 타고 내를 이루는 문천은 이곳 남산마을의 젖줄 같은 곳이다. 길이가 십리도 넘는 문천은 경주를 휘감고 도는 형산강으로 흐르고 길고 긴 형산강은 지친 몸을 이끌고 포항 앞 바다로 흘러들어 푸르고 드넓은 동해에 당도하여 드디어 끝도 없는 태평양을 이룬다. 이렇듯 문천은 형산강의 어머니의 강이요 동해의 할아버지 같은 강이다. 어쩌면 나의 핏줄 같은 곳이요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가을걷이가 끝나면 골목에는 마을에서 구성한 풍물패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을 밟았다. 한 해의 無事安逸과 그 복을 빌고 고난의 한해를 극복한데 대한 자축의 페스티발 일컬어 마을의 경사 같은 날이었다. 그런 행사가 집집마다 지신을 밟고 복을 빌며 풍악처럼 잔치처럼 이어졌다. 풍물패를 맞은 家家戶戶마다 두 손을 모아 내년의 길흉화복을 빌고 풍물패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야말로 온동네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초등 1년생에 가슴에 코흘리개용 하얀 수건을 달고 다니던 나도 덩달아 신이나서 누렁이와 함께 풍물패를 따라다녔다. 저녁이 짙어지고 길고 긴 축제가 끝나면 마을 한 복판에 수호신처럼 서 있는 팽나무 아래에서 파장이 되고 뒷풀이가 밤이 이윽토록 이어졌는데 덕시기 위에 놓인 푸짐한 고기 안주거리를 놓고 대접의 막걸리가 수도 없이 돌아갔다. 초롱불이 가물거리며 일꾼들과 패거리도 헤롱거리고 어른들이 재마삼아 준 막걸리에 취한 아이들이 여기저기 픽픽 쓰러졌다. 그래도 문천은 잠자코 흘러갔다.
마을에 비가 오면 아이들은 조바심이 났다. 비가 오면 문천가에 미꾸라지가 배를 뒤집기 때문이었다. 바지개 같은 대나무 소쿠리를 준비하고 큰 술주전자 하나씩을 덜렁거리며 문천가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소쿠리를 얕은 냇가 풀숲에 쑤셔 넣고 손짓을 하면 윗쪽에 있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두 발로 풀숲을 지치며 자근자근 내려온다. 소쿠리를 잡은 긴장한 두 손이 번쩍 올라가면 아이들의 희번덕거리는 눈이 소쿠리 안쪽으로 쏠렸다. 빈 소쿠리에 개구리만 펄적펄쩍 뛰면 고놈의 개구리를 잡아 냇가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상류로 올라 가면서 미꾸라지 지치기는 계속 되었고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주전자에는 제법 물고기 소리가 조잘대었다. 돌아온 저녁에는 어머니가 대견스러운 아들의 어깨를 어르며 아이고 우리 아들 다 컸네! 하며 호박잎과 재빛잎을 넣은 추어탕을 입이 알싸하도록 퍼먹었고 둥근배를 안고 포만한 저녁을 뒹굴었다.
이따금 마을에 초상이라도 나면 마을 앞산인 마을의 공동묘지 같은 안산으로 상여를 모시는데 아침 일찍 발인을 끝낸 상여가 취기가 돌 만할 무렵 상여꾼들이 줄을 지어 상여에 매달린다. 상여가 일어서면 앞 선 소리꾼이 구성지고 슬픈 가락으로 망자의 이생의 한과 전생의 영면을 노래하며 천천히 걸음을 움직인다. 소리꾼이 선창으로 이제 가면 언제 오나~~하면 상여꾼이 어~화 어~화 어화넘자 어화~~하고 화답을 하며 오리도 안 돠는 거리를 오전 내내 거북이 기어 가듯 하며 간다. 그렇게 뒤척거리던 상여가 안산 밑에 도달하면 의외의 복병을 만난다. 유유히 흐른 문천이 거기 누워 있기 때문이었다. 10여미터가 조금 넘는 얕은 냇가이지만 초겨울에 살얼음이라도 얼어 있는 날에는 정말이지 상여꾼들이 죽을 맛이었다. 소리꾼이 앞에서 허둥대다가 정작 자기는 들어가지 않고 지레 큰 목소리로 상여꾼을 독려해 마지 않으며 입수를 종용해댔다. 그러면 상여꾼들이 도살장 끌려가듯 힐금거리며 앞 선 이들부터 차가운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데 한동안 상여소리가 하늘을 찔러댔다. 그러고는 소리꾼은 상여꾼 하나를 불러 얌생이처럼 업혀 건너 갔더라.
백발의 노추가 비틀비틀 문천가를 걷는다. 하늘가에 먹구름이 세월을 아는지 더욱더 우중충하다. 유구한 세월을 수 많은 마을의 이야기를 안고 흐르는 문천은 예전처럼 말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도 이 문천을 건너 가셨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세월이 이제 이 문천을 건널 것이다. 문득 빗방울이 이는 문천가에 철새들이 외롭게 나른다. 하늘 높이 나르는 세월은 이제는 까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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