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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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3월이 깊어졌는데도 절기는 아직 정월이다. 정월 대보름이 엊그제이니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어도 그리 아쉬워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한낮에는 온기를 품은 봄기운이 스며 있는 듯한 바람이 밭고랑 위를 쓰다듬어 지나가고 옆집 할머니는 도저히 못 참아 밭고랑에 나와 앉았다. 겨우내 견딘 풀죽은 파 고랑을 호미로 헤적이는 따듯한 봄햇살이 할머니와 함께 이랑에 앉아 있다. 밭둑에 애기동백도 긴 겨울을 뱉어내며 움트는 봄을 파릇하게 준비하고 있다. 기특하게도 시내 花園에서 재작년에 무심코 사다 심은 애기동백이 겨울을 잘 버텨내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 대문 앞 꽃밭에 좌우로 심은 장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가 궁금할 정도로 베실베실 말라 있다. 지난 여름 여린 장미 모종을 사다 심어 놓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며 영양제를 사다 꽂아 두기도 하고 옆집 퇴비를 얻어다 뿌리고 북을 돋우며 갓난아이 돌보듯 갖은 정성을 다해 여름 내내 노심초사 하며 자식처럼 돌보았다. 힘겹게 잎이 피었다 지다를 여러번 하더니 드디어 초가을에는 작고 노오란 꽃망울 하나가 터져 아내가 기겁을 하고 좋아 하였다. 그것도 잠깐이더니 또 베실베실 잎을 떨구며 겨울을 지냈다. 매일 갸웃하며 지나는 애기장미의 동태에 온 봄의 촉각이 쏠려 있다.
재작년 이른 봄에 안사람이 좋아한다 해서 담장 밑에 무화과 유목을 사다 심었다. 아내가 무화과를 좋아하고 무화과가 여성에게 효험이 있다는 건강프로를 보더니 그날로 시내에 달려가 묘목 하나를 사다 심은 것이다. 그런 묘목이 일년을 무럭무럭 자라더니 작년 여름 초복이 지나자 기적 같이 탐스런 무화과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놀란 눈을 껌벅거리며 외출에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애지중지 자식 다루듯 열매를 어루만지며 가지를 쓰다듬어 마지 않았다. 긴 폭염이 지나가고 초가을이 되자 파랗던 열매가 어느날 갑자기 연자색으로 분칠을 하고 그야말로 입술이 쪽쪽 갈라지기 시작하자 또 한 번 아내는 기암을 해 마지않았다. 가을내내 외출을 다녀오기라도 하면 습관처럼 무화과 나무로 달려가 대여섯 개씩 혹은 운이 좋은 날에는 열개도 넘게 두 손에 가득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그 자리에서 서너 개를 먹어 치운다. 그런 일이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까지 계속 되었다. 정말 자연과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초겨울 찬바람이 옷깃을 여밀자 안사람이 어디서 들었는지 무화과 유목은 1년 정도는 겨울을 나기가 버겁기 때문에 나무를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무의 어지러운 잔가지를 정리하고 비닐을 잘라 큰 봉투를 만들고 씌워 혹한에 견딜 투명 방한복 한 벌을 입혔다. 옆집 숙모가 놀란 눈으로 세상에 나무에 옷을 입히기도 하네 웃으며 지나간다. 하긴 지난 여름에 그렇게 많은 선물을 주었으니 서울 새댁이 마음이 곱기도 하네 하며 웃으며 지나간다. 시골태생인 나도 나무에 옷 입히기는 처음이고 그져 안사람이 시키는데로 하는 걸 숙모가 아는 듯 찡긋하며 초보 농사꾼을 응원한다.
간밤에 온 카톡을 열어 보니 안경을 낀 어엿한 손자가 중등 입학식을 마치고 그 모습을 할애비에게 보내왔다. 사춘기라고 그렇게 애미랑 싸우더니 지난 여름엔 제 혼자 시골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역사에 홀로 내린 손자를 한참을 부여 안고 조손의 정을 나눈 것이 꿈결처럼 남아 있다. 서울에 있을 때 유독 고놈이 나를 따라서 밥상에 앉기라도 하면 으례히 할애비 무릎에 앉아 밥을 먹기도 해서 지애미의 꾸중이 잦았다. 고놈이 벌써 그렇게 자라 듬직한 중학생이 되었다니 입학식에 가지 못한 할애비의 심정은 꽃샘추위처럼 차다. 찬바람이 지나면 만물이 움트는 봄이 오듯이 내 손자의 앞날에도 봄기운이 스며들길 천리 먼 곳에서 행운을 빌어마지 않는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 꽃샘추위라니 과연 정자 옆에 늘어진 개나리줄기에 노오란 빛도 멈추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반질한 윤은 망울에 봄물기가 올랐는데 추위때문에 움츠려 눈치만 보고 있다. 연못에 물풀들도 찬바람에 떨고 있고 아직은 봄이 멀어 마음마져 차갑다. 그래도 시간은 어제처럼 흘러 갈 것이다. 새벽은 차지만 마음은 벌써 봄이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우연이라도 정말 놀랄만 합니다~
시조방에 노크 하니 통기척이 없어 혹시나 하고~~~~ㅎ
우연은 그게 아니고 꽃샘추위가 남았다고 댓글을 달다가
참 누가 만든 단어 인지 잘 만들었다
세계 유일하게 꽃샘추위를 맛깔나게 표현 하는 말일거야 했거든예~
그런데 이 방에 오니 글 제목이~~~~~^^*
무화과 나무에서 익은것을 바로 맛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표현할수 없는 사르르 녹는 맛~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예~!
정성을 다한 장미도 살아 날것이고예
봄은 축제의 시작 입니다~
늘 좋은 날 행복 히ㅡ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삼시 끼니는 잘 드시는지요?
우짜든지 잘 잡숴야 합니다
초가을 무화과는 참 단맛이 일품입니다
살짝 갈라진 분홍의 맛이 그립습니다
장미 두 그루는 긴가민가 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참흙이나 진흙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집터가 거의가 마사토 지역이어서
뿌리 내리는 게 더딘 것 같기도 하고,,,ㅎ
따스한 봄기운을 기다려 봅니다
식사에 신경 쓰시고요 고맙습니다 정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