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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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더듬다
/장 승규
담벼락에
담쟁이가 계절을 건너고 있습니다
붙어 있던 자리마다 손바닥 자국만 남겨두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담벼락의 체온을 더듬을 뿐입니다
감잎 다 떨어진 빈 가지들 사이
우듬지 가까이에 남은
누런 감 세 알
새들이 몇 번이나 다녀갔습니다
다 건너간 것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
바람이 몇 번 더 불어도
저 감은 한 동안
이 계절을 붙들고 있을 겁니다
담쟁이는 다시
담벼락의 체온을 더듬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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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계절을 더듬다〉
장승규의 시 〈계절을 더듬다〉는 계절의 이동을 말하면서도, 사실은 남아 있음의 방식을 묻는 시다.
이때 담쟁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계절을 건너고 있는 화자의 또 다른 형상으로 읽힌다.
봄을 앞에 두고 있으나, 시의 시선은 끝내 겨울 쪽에 머문다.
이미 건너간 것들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 시간을 사유한다.
시의 첫 행, “담벼락에 /담쟁이는 계절을 건너고 있습니다”는 진행형이다. 이미 건넌 것이 아니라, 건너고 있는 중이다.
이 미묘한 시제 선택이 시 전체의 긴장을 만든다. 담쟁이는 떠나는 존재가 아니라, 떠나면서도 붙어 있는 존재다.
“붙어 있던 자리마다 손바닥 자국만 남겨두고”라는 표현은 시간의 흔적을 신체의 기억처럼 구체화한다.
계절은 추상적이지만, 그 흔적은 손바닥처럼 만져질 수 있다.
이어지는 “담벼락의 체온을 더듬을 뿐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시는 감각으로 내려온다. 시각에서 촉각으로의 이동이다.
이때 담쟁이는 더 이상 식물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 더듬음은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계절의 온도를 가늠하려는 몸짓에 가깝다.
중심 장면은 단연 “우듬지 가까이에 남은 / 누런 감 세 알”이다.
감잎은 이미 다 떨어졌고, 계절은 거의 끝났는데도, 그 세 알은 남아 있다.
“새들이 몇 번이나 다녀갔습니다”라는 한 줄은 이 남아 있음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그것은 선택받지 못한 잔여일 수도 있고, 끝까지 남겨진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는 그 의미를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이라는 표현으로, 남겨짐과 남김 사이의 여지를 남겨둔다.
후반부에서 시는 다시 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이 몇 번 더 불어도 / 저 감은 한 동안 / 이 계절을 붙들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감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계절을 지탱하는 존재로 전환되며, 동시에 화자 자신이 머물고 있는 시간의 방식이 된다.
보통 우리는 계절이 사물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사물이 계절을 붙잡고 있다.
이 역전이 시를 한 단계 더 깊게 만든다.
마지막 두 행, “담쟁이는 다시 / 담벼락의 체온을 더듬습니다”는 처음과 호응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처음의 더듬음이 ‘지나가는 과정’이었다면, 마지막의 더듬음은 ‘남아 있는 감각’이다. 계절은 바뀌어도, 더듬는 행위는 계속된다.
이 반복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의 지속을 보여준다.
이 시는 봄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봄이 오기 직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 시간을 붙잡는다.
그래서 이 시의 중심에는 언제나 경계가 있다. 겨울과 봄 사이, 사라짐과 남아 있음 사이, 떠남과 머묾 사이.
그 어귀에 서서, 시인은 말하지 않고 더듬는다.
담쟁이는 담벼락의 체온을 더듬으며 봄이 스며들었는지를 묻고,
감은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그 답을 늦추고 있다.
봄이 완전히 도착하는 순간,
담쟁이는 다시 위로 기어오를 것이고, 감은 비로소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이 시의 계절은 저절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망설임과 응답 속에서 비로소 건너진다.
장승규님의 댓글
Tracing the Season
by Sankei Jang
On the wall,
ivy is crossing the season
At every place it clung,
only palm-prints remain
Whenever the wind passes,
it merely feels the warmth of the wall
Among the bare branches
where persimmon leaves have all fallen,
near the treetop,
three yellow persimmons remain
Birds have come and gone
several times
What has already crossed
left them—
the last
Even if the wind blows a few more times,
those persimmons, for a while,
will keep holding this season
And the ivy, again,
feels the warmth of the wall
(In the study in Johannesburg, March 03,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