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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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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7건 조회 866회 작성일 18-04-24 12:35

본문

함박눈 필법

 

 

 

어찌나 펑펑 내리던지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기역 자로 끝날 것 같았던 눈송이가

슬쩍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미음이 됐다

 

완전한 착지가 이루어내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장

가끔 단문을 놓을 때면 멧돼지가 목욕하거나

까마귀가 알사탕처럼 먹어버렸다

 

한번 휘두르면 좀체 붓을 놓지 않는 어마어마한 필력

밤새 장문을 놓는 날은

산닭이 큰소리로 읽어주기도 했고

중요한 부분에서는 고라니가 울타리까지 내려와 밑줄을 그었다

 

그럴 때면 박새도 따라 추녀 밑에 매달려 조곤조곤 읽어 내렸다

문장가는 독경 소리를 듣다가

획이 빠지거나 부족한 문장엔 슬그머니

솔가지를 흔들어 첨삭하기도 했다

 

그 위로 토끼가 껑충껑충 따라다니며 동글동글한

마침표를 까맣게 찍었다

 

그런 날이면 나도 덩달아 종가래로

종일 마당 가득 써 논 경전을

뒤척이며 읽었다.

댓글목록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시인님 한테  걸리는 사물은 꼼짝 마라구만요
다 싯귀가 되어
구가 되고 행이 되고 장이 되네요
부럽습니다요

조경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봄날에 읽는 함박눈 필법, 운치 있네요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은
밤새 읽어도 못읽을 것 같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당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녹슬지 않는 필력으로
봄에 함박눈을 만납니다.
묵묵하게 고요하게 지켜주시니
동인방 아랫목이 따뜻합니다

서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번에 못 뵈어 아쉬웠지만
머릿속에 늘 잊혀지지 않는 얼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시 한 편...
부러운 마음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보이는 족족 딱 걸리는 시안
이 계절이 지난 후 몇 편의 필법이 남을지?
대단한 다작에 박수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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