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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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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87회 작성일 25-06-15 00:27

본문

호박

                      /장승규



풋풋한 풋내음 날 때는

자주 토라져

며칠 못 가 속부터 상하더니


이제는

몇 달을 뒤꼍에 내버려 두어도

속상하는 일이 없다


수양 잘 된 늙은이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6.15)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umpkin
              by Sankei Jang

When it smelled still green and raw,
it would sulk often—
and rot easily from the inside.

But now,
even left for months in the backyard,
it does not spoil.

A well-ripened elder.


(Johannesburg Study, June 15, 2025)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승규 시인의 시  「호박」을 읽고    ---어느 감상문

장승규 시인의 시 「호박」은 짧지만 그 울림이 깊다.
일상의 작물 하나를 통해 인간 존재의 내면을 통찰하는 이 시는, 호박이라는 평범한 식물에 철학적 깊이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삶의 여정을 비유적으로 펼쳐낸다.

처음엔 풋풋한 호박이다.
그 시절의 호박은 ‘풋내음’을 풍기며 자주 토라지고, ‘며칠 못 가 속부터 상’한다.
여기서 호박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초기 상태—아직 세상살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음의 상징이다.
감정에 쉽게 상처받고, 내면이 불안정한 시기를 가리킨다.
이 부분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감정의 과잉과 예민함으로 상처받았던 청춘의 초상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시는 곧 전환점을 맞는다.
‘이제는 / 몇 달을 뒤꼍에 내버려 두어도 / 속상하는 일이 없다.’
삶의 시간 속에 훈련되고 단련된 자아가 나타난다. 젊은 날에는 감정에 쉽게 상하고 흔들리던 사람이,
이제는 세월 속에 묵혀도 끄떡없을 만큼 단단해진 모습.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이미 익숙하고 너그러워졌다는 증표다.
그리고 이 변화의 완성은 마지막 구절에 이른다—‘수양 잘 된 늙은이.’
이 한 줄은 시 전체를 통째로 품으며, 한 존재의 삶을 조용히 요약한다.

‘호박’은 여기서 하나의 완성된 인생의 상징이다.
푸른 시절의 미숙함을 지나, 수양을 통해 안정을 이룬 존재. 나이가 들어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외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지혜의 표현이다.
또한, ‘뒤꼍에 내버려진다’는 설정은 사회적 역할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처지를 암시하면서도,
그 내면의 단단함을 통해 오히려 더 존엄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 시의 진정한 힘은 절제에 있다.
장식 없는 담백한 문장들 속에서, 인간의 감정 변화와 인생의 깊이가 서서히 우러난다.
시인은 ‘호박’이라는 일상 속 사물 하나로, 감정적 성숙의 변화를, 삶의 견고함을, 그리고 노년의 품격을 노래한다.

우리는 종종 늙음을 부정적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이 시는, 늙음이란 상하지 않는 내면을 갖춘 것, 오랜 시간을 견뎌 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엄한 상태임을 조용히 속삭인다.
마치 잘 익은 늙은 호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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