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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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즉흥시 한 편
대보름이라는데
달은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 들리느니
물소리뿐입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남반구의 정월, 봄은 어디서 오는가 – 장승규의 〈정월〉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정월〉은 시간의 문턱과 계절의 경계, 그리고 지리적 낯섦 속에서도 마음의 고향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시다. 남반구, 요하네스버그에서 맞는 정월—이 이질적인 배경은 시인의 정서를 더욱 선연히 드러낸다. 시간은 새해로 넘어갔지만, 공간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고 먼 땅이다.
“자정 지나서 / 왔다 이미 갔는지, 달은 / 하늘에도 땅에도 보이지 않고”—시의 첫 연은 정월이라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뭔가 빠진 듯한 공허감으로 시작된다. 상징적으로 ‘달’은 새해의 기운, 희망, 혹은 그리움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달이 ‘보이지 않는다.’ 어둑한 창밖, 그리고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리는 침잠한 장면은, 존재의 외로움과 고요한 기다림을 표현한다.
이내 시인은 청각에 집중한다. “귀는 밝아 / 연못에 비단잉어 살 부비는 소리 들린다”—물리적 어둠 속에서도 감각은 깨어 있다. 이 귀 기울임은 단순한 청각의 예민함이 아니라, 외로운 타지에서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감각의 확장이다. “아득히 풍악소리도 들린다”는 구절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듯한, 아련한 향수와 고향의 정취가 스며든다. 정월의 정서는 멀리 있지만, 마음의 풍악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정월이라 / 고향은 눈 속에도 남쪽부터 봄이 온다는데”—북반구 고향의 정월은 한겨울이지만, 남쪽 지방부터 봄이 찾아온다는 말은 생명의 약동과 희망의 순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화자는 “봄도 왔다 이미 갔는지 / 한 생, 단풍 들게 생겼네”라고 말한다. 남반구에서는 정월이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단풍에 빗댄다. 봄은 스치고 지나가고, 생은 저물어가는 빛을 닮아간다. 이것은 계절의 뒤섞임 속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자 시간의 덧없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말한다. “다행히 벗이 있어 / 고향에 봄소식 전해 들으니”—바로 이 대목에서 시의 정서는 전환점을 맞는다. 물리적 거리와 계절의 어긋남을 초월하여,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는 고향의 ‘봄소식’은 화자의 마음을 다시금 환히 밝힌다. “내 마음 뒤뜰은 대보름처럼 환해진다”—마침내 시인은 고향의 달을 마음 안에 다시 띄운다. 보이지 않던 달이, 마음의 연못 위로 환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마무리
〈정월〉은 시차와 계절의 엇갈림, 고향과 타향의 거리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지켜내는 시인의 정서적 풍경이다. 남반구의 대지 위에서도, 그는 여전히 고향의 정월을 살고 있다. 계절은 다르고, 위치는 멀지만, ‘벗’이라는 다리 위로 전해진 봄소식이 그의 ‘마음 뒤뜰’을 환하게 밝히는 이 장면은, 결국 따뜻한 인간 관계야말로 어떤 달력보다도 더 깊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 마음의 정월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 마음 뒤뜰은, 환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