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3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낙타3
/장 승규
해 질 녘
해를 등지고 앉아서야 알았네
한 생을 지고 온 것이
빈 지게였다니
바람은
숨어서라도 울 언덕이 있어서 좋겠다
아마도 저 그림자
아직 날 따라잡지 못한 것이리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7.2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낙타3〉
장승규 시인의 〈낙타3〉은 늦게야 도달한 인식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시다.
해 질 녘이라는 시간 설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을 되비추는 각도의 변화다.
화자는 해를 등지고 앉아서야 알았다고 말한다. 오래 붙들고 있던 확신은 빛을 정면으로 받을 때가 아니라, 등을 돌리고 난 뒤에야 드러난다.
그 깨달음은 갑작스럽기보다 지연된 것이다. 이미 지나온 시간 위에서만 도착하는 이해다.
“한 생을 지고 온 것이 빈 지게였다니”라는 고백은 허무의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재검토다. 우리가 평생 짐이라 믿어온 것들에 대한 조용한 의문이다.
지게는 분명 무거웠을 것이고, 어깨에는 굳은살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게가 의미였는지, 아니면 단지 버텨온 시간의 압력이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이 빈 지게는 실패의 증표라기보다, 우리가 평생 ‘짐이라 믿어온 것들’에 대한 질문이다.
시는 그 짐의 정체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 각자의 삶을 그 빈자리에 올려두게 한다.
바람을 향한 시선은 이 작품의 가장 고요한 비애를 품는다.
화자는 울고 싶지만 쉽게 울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바람은 감정을 지닐 수 없는 자연이지만, “숨어서라도 울 언덕이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 속에서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이 문장은 세계에 대한 축복이라기보다, 자신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은신처에 대한 갈망에 가깝다.
시는 연민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울음을 드러내지 않는 자의 침묵을 밀도 있게 세워 둔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사유를 조용히 뒤집는다.
“아마도 아직 /그림자가 날 따라잡지 못한 것이리.”
보통 그림자는 주체의 흔적이다. 삶의 증거이며 지나온 시간의 윤곽이다.
그러나 여기서 화자는 그것이 아직 자신에게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부정이나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삶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림자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앞서 걸어왔다는 뜻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이해가 아직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미묘한 시간의 어긋남 속에서 시의 성찰은 결론 대신 여백을 남긴다.
〈낙타3〉은 연작의 흐름 속에서 더욱 의미를 얻는다.
앞선 이동의 시간을 지나온 화자는 이제 앉아 있다. 해를 등지고, 빈 지게를 바라보며, 그림자를 재촉하지 않는다.
이 정지는 끝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로 내려가는 순간이다.
짐을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묻게 되는 질문, 그 질문 앞에서 완전히 단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떨림이 이 시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남긴다.
단정 대신 유보를, 결기 대신 망설임을 택하면서도 삶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이 시를 읽는 감상자가 아니라, 해 질 녘에 함께 앉아 있는 동반자가 된다.
장승규님의 댓글
Camel 3
/ Sankei Jang
At dusk,
only after sitting with my back to the sun
did I come to know.
All my life
What I had carried
was an empty pack saddle.
The wind
how good it must be to have a hill
where he can weep, even in hiding.
Perhaps
my shadow
has not quite caught up with me.
(At the study in Johannesburg, July 23, 2025)
임기정님의 댓글
시인님 시 잘 읽었습니다
툭툭 치는 쨉이 무섭듯이
빈 지게에 울만한 언덕에서 그로기 상태입니다
시인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승규님의 댓글
기정님!
감사합니다.
기정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뵙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