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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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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26-03-31 21:00

본문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성영희

 
모든 구멍은 머리이고 꼬리입니다
그 꼬리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다시 꼬리만 까딱거리는 뱀
스스로 감은 불협을 풀면
냉기가 사라질까요
제 몸을 제가 품고 있는 형상은 축축합니다
똬리를 틀면 헐거워진 구멍에선 금세
포만에 찬 소리가 쉭쉭 새어 나오죠
돌돌 말린 궁리는 가장 완벽한 방어 자세로
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뜻일까요
구멍이 탁, 하고 닫히는 때가 있어요
똑똑 두드리면
스르륵 사라지는 꼬리로 대답하는 뱀
제 뒷모습을 뚝 잘라버리죠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똬리를 풀고 구멍을 빠져나가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올 풀린 스타킹과
탁 닫히는 꼬리뿐이죠
검은 입구는
어떤 다정한 말도 다 뚝뚝 끊어 먹어요

나는 들길에 나부끼는 뱀의 허물
세상의 모든 구멍이란 철이 없어서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허물을 뒤집어써도 좋다는 각오입니다

뱀이 돌아올 시간입니다
오늘의 혀는 얼마나 더 갈라져 있을까요
구멍을 열면 벗어 놓고 간 허물들이
스멀스멀 머리를 치켜들어요
매듭지을 수도 없는 긴 몸을 끌고 다니는 뱀은
사라지는 꼬리가 더 무섭습니다


<2026년 3월 시마을 이달의 초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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