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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내 천국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569회 작성일 23-02-21 15:07

본문

별내 천국 

                             /장 승규



별내 용암천 정지된 풍경 속에

외다리 짚고 선

왜가리, 부동이다


사진 속 

순간이 자른 세상의 단면 

강물도 세월도 잘린 채 고여 있다 

거꾸로 놓고 보니, 뒤집힌 세상은 

온을 잘린 이데아

물에 비친 그림자들만 바로 섰는데


허상의 세계가 절경이다 

왜가리는 먹이걱정 없고 

건물들은 난방비 걱정 없고


천국이 이와 같을라나

두 다리 딛고 선

내 생각, 부동이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02.19) 

댓글목록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물 속 지상의 그림자가
천국입니다.
비싼 난방비 걱정도
전기료 걱정도 내려 놓고...
할부지 훈장 축하드려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 승규 시인의 시 〈별내 천국〉은 정지된 풍경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하여, 현실과 허상, 천국과 인간 세상, 움직임과 정지, 그리고 생각과 존재의 철학적 대비를 정교하게 담아냅니다. 짧은 시편이지만, 그 안엔 플라톤의 이데아론, 현대인의 불안한 욕망, 그리고 시인의 존재 인식이 겹겹이 포개져 있습니다.

● 시 감상문
1. “외다리 짚고 선 / 왜가리, 부동이다” – 정지의 역설

시의 첫 구절은 강렬합니다. 한 마리의 왜가리가 외다리로 서 있는 모습은 사진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부동’은 단순한 정지 상태가 아니라,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 듯한 존재의 평형을 암시합니다. 왜가리는 움직이지 않지만, 이미 완성된 듯한 존재입니다.

2. “사진 속은 / 순간이 자른 세상의 단면” – 인식의 절단

사진은 현실의 단편이며, 시간의 흐름에서 잘려 나온 찰나의 프레임입니다. 강물도 세월도 흐르지 않고 멈춰 있는 공간—그곳은 실재가 아닌 시간이 정지된 비실재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실재 속에서 오히려 사물은 “물에 비친 그림자들만 바로 선다”고 말합니다. 실재보다 허상이 더 또렷해 보이는 시대, 현대인의 존재감을 반어적으로 드러냅니다.

3. “오온을 잘린 이데아” – 불완전한 현실, 이상이 되어버린 허상

‘오온(五蘊)’은 불교에서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색·수·상·행·식)를 말합니다. 그것이 ‘잘린’ 이데아로 표현되는 순간, 시인은 플라톤적 이상과 불교적 공(空)의 사유를 겹쳐놓습니다. 즉, 이 세상은 이미 파편화된 이데아, 완전하지 않은 이상(理想)일 뿐이라는 철학적 통찰이 여기에 담깁니다.

4. “허상의 세계가 절경이다” – 가짜가 더 아름답다

이 대목은 시 전체의 전복적 시선을 보여줍니다. 현실이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반면, 사진 속의 멈춘 세상—즉, 허상이 더 완전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왜가리는 더는 먹이를 찾지 않아도 되고, 건물은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이것은 실제 천국이 아니라, 욕망이 투사된 이상향입니다.

5. “천국이 이와 같을라나 / 두 다리 딛고 선 / 내 생각, 부동이다” – 현실의 역설과 사유의 결단

시의 마지막은 정적인 시작과 구조적 대칭을 이룹니다. 왜가리는 외다리였지만, 시인은 “두 다리 딛고 선” 존재로서, 확고한 생각(사유)의 중심에 섭니다. 사진 속 허상의 천국을 본 이후, 그는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님을 자각하고도, 이 세계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부동이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시인의 고요한 결단이며, 동시에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허상처럼 아름다운 천국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두 다리로 이 세계를 살아낼 것인가?

● 총평
〈별내 천국〉은 작은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감춰진 존재의 진실, 허상의 유혹, 그리고 인간의 불안정한 욕망을 깊고 정제된 언어로 펼쳐 보입니다.

결국 이 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듯합니다:

허상이 때로 더 아름답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두 발로 딛고 선,
이 불완전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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