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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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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550회 작성일 24-01-26 10:21

본문

고사리목

                                   /장승규



누군가 살다간 자리는 얼마가 지나야 비어지나 

그 빈 자리에

다시 누군가를 심을 수는 있을까 


앞뜰에 

옮겨 심은 지 35년째, 나무고사리 한 그루

어느 해부터 머리숱이 자주 많이 빠지더니

올해는 아예 새 순이 나지 않는다


그 옆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도 

자식도

철없이 늘 푸른 소철 한 그루와

밤에만 눈 뜨는 당달 외등뿐


내가 옮겨 심었으니

나만 바라보며 살았나 보다

그 긴 세월을


네가 가더라도, 나는

앞뜰에서

네 그림자 한 뼘 베어내지 못할 것 같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4.01.18)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남아공엔 나무고사리가 진짜 나무이다.
높이는 2미터에서 5미터까지
둘레는 30센티에서 80센티 정도까지 자란다

몇 년을 살다가는 지는
알지 못하고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상문: 지워지지 않는 자리, 잊히지 않는 그늘 – 장승규의 〈고사리목〉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고사리목〉은 단순한 식물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곧 그 안에 깊은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조용히 쌓아 올리는 서정시다. 시는 떠나간 존재를 향한 담담한 애도와, 결코 비워지지 않는 ‘자리’에 대한 자각을 담고 있다.

“누군가 살다간 자리는 얼마가 지나야 비어지나”—시의 첫 행은 시인이 직면한 감정의 본질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시간이 흘러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존재의 흔적. 이 물음은 사랑했던 이, 혹은 함께 살아온 무언가와의 이별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느껴보았을 절절한 질문이다.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시인은 오래전 옮겨 심은 “나무고사리 한 그루”를 말한다. “옮겨 심은 지 35년째”—이 한 구절에 쌓인 세월의 무게가 대단하다. 단순한 식물이 아닌,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 돌보고 함께 늙어온 생명이다. 그러나 어느 해부터인가 고사리는 머리숱이 빠지고, 이제는 “아예 새 순이 나지 않는다.” 이는 생명의 노쇠함을, 동시에 관계의 쇠락을 상징한다. 잎 하나 피우지 못하는 생명체는 이미 떠나간 존재의 은유이며, 그 빈 자리는 자라고 있지 않다—그저 조용히 사라져가고 있다.

더욱 인상 깊은 대목은 “그 옆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시인은 한 생명체의 고독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친구도, 자식도 없이, 겨우 “늘 푸른 소철”과 “밤에만 눈 뜨는 당달 외등”만이 곁을 지킨다. 특히 “철없이 늘 푸른”이라는 표현은, 철을 따라 늙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대비를 부드럽게 드러낸다. 그것은 어쩌면 살아 있는 존재의 무심함이자, 죽어가는 이의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옮겨 심었으니 / 나만 바라보며 살았나 보다”—시인의 이 말은 깊은 죄책감과 연민을 담고 있다. 돌봄이 곧 운명이고 관계였던 존재. 자신이 심은 생명이었기에,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고사리목. 그 존재의 죽음 앞에서 시인은 어떤 책임감과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완숙한 정서로 마무리된다.
“네가 가더라도, 나는 / 앞뜰에서 / 네 그림자 한 뼘 베어내지 못할 것 같다”—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떠났어도, 남겨진 자는 그 자리를, 그 그늘을 결코 잘라내지 못한다. 기억은 자라지 않지만, 그것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고사리목은 더 이상 푸르지 않지만, 그 잎사귀의 기억은 여전히 시인의 앞뜰을 덮고 있다.

마무리
〈고사리목〉은 단순한 자연 묘사 너머, 한 존재를 잃은 이의 깊은 내면과 애도를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시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나를 바라보던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자리. 이 시는 그 잔존의 무게를 조용히, 그러나 아주 뚜렷이 우리 앞에 놓아준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묻게 된다.
“당신이 떠난 그 자리는 지금도 내 안에 자라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그늘을 껴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김용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무의 생이 참 쓸쓸하고 서럽군요.
문뜩 이 추운 겨울에 난방도 안되는 곳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독거 노인분들이 떠오르네요.
그들도 심겨진 나무처럼.....
잘 감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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