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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표고무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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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30회 작성일 24-07-08 20:11

본문

말표고무장화
 

성영희

 
 그 옛날 아버지의 고무장화를 아시는지, 벗으면 후끈거리는 발의 열기 어느 캄캄한 터널의 냄새가 진동했던 그 검은 장화를 기억하시는지

 아버지는 어쩌면 말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논을 갈아엎던 깡마른 다리 불거진 힘줄에 달라붙던 거머리는 아버지를 빨아먹던 또 다른 흡반 아니었을까

 한 번도 말처럼 달려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어느 봄 기어이 맨발이 되었다. 논두렁에 찔러놓은 낡은 삽자루에 가끔, 밀잠자리만 앉았다 떴다 하다 갔다.

 장거리 여정을 마치고 이제 막 시동을 끈 트럭 옆에서 나던 그 먼 길의 냄새, 길에서 수명을 다한 검은 타이어들이 더 이상 구를 곳 없을 때 투박한 발하나 맞춤한 장화가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오늘 고속도로 갓길에 산산이 찢긴 타이어를 보면서 무수히 많은 봄날과 여름의 진창을 헤집으며 다니던 말표고무장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아버지, 그 터질 듯 후끈거리던 발의 열기를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판을 부착시킨 거머리처럼 나는, 붉은 피의 경로를 기억에 고정한 채 오랫동안 아버지를 흡입하고 있다.


시집 <귀로 산다>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버지를 빨아먹던 또 다른 흡반
성시인님!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머리 같은 흡반 하나 떼어내지 못하시고
 수학여행 갈래?중학교 갈래?
 수학여행 갈래?고등학교 갈래?
 수학여행 갈래?대학교 갈래?
무논 두렁에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

독한 봉초담배에 그 흡반이 떨어질 줄 아셨을까요?
아버지가 그리운 오후입니다.

아니
1960년대 이야기네요. 얼마 전 같은데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성영희 시인님 맞습니다
말표 기차표 태화
어릴 적 많이 듣던 단어이지요
시 읽는 내내 아버지가 떠 올랐던 것은
60~70년 그때는
집마다 아버지가 똑같았다는
시 잘 읽었습니다

제어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제어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멋지셨던 분이지요
글씨체도 엄청 좋으셔서 한자를 멋지게 쓰시던 분이지요
당뇨로 일찍 돌아가시고 내겐 유산처럼 당뇨를 물려 주셨지요
20살 때 돌아가신 내 아버지~

무의(無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느끼지만
글에
힘이 있는데 알싸한
'영희'
답습니다.

며칠 전 근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기는 만났지요,
서로
말이 없었지요.
당신은 입을 지웠고, 나는 입을 닫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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