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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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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00회 작성일 25-05-18 16:24

본문

버려질 순서

 

성영희

 
이사를 앞두고
하나씩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들어왔던 것들이
뒷걸음질로 나간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불화했던 것이
모서리들이었고
화해한 것도 모서리들이었다.
오래된 것들은 그 모서리부터 낡고 닳는다.
화해는 서로 닳는 일이었다.

몇 번의 유행이 바뀌는 동안
옷가지들은 날씬했던 과거에 머물러 있다.

버릴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손대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무거운 것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꾹 참고 또 참았다는 듯
짓눌린 자국들은 이 집에 남을 것이다.
이런저런 자국들은 쉽게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다.

쌓아둔 책이 허물어지고
가지런했던 것들은 헝클어지면서
제 쓸모를 버린다.
미끄러진 책들 사이로
섞이고 가려진 이름, 이름들
몸 없는, 무수한 이름들과 동거했었다.

고요했던 구석들이
먼지로 살찌고 있었다.

 


2017년 경인일보,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23년 인천문학상, 김우종 문학상,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시집 : 『섬, 생을 물질하다』 『귀로 산다』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



<시와 소금 2025 여름호>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버리기는
앞으로 들어왔던 것들이
뒷걸음질로 나가는 것이군요

날씬했던 과거는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고

짓눌린 자국들도
쉽게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고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요번 이사하면서
버릴 것과 남을 것을 고르는데
한참 뜸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동인 시집은 다
챙겨왔지요,
역시 먼지 한 올 없이 탁탁 
털어낸 시어들이 내 눈을 잡아끌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시향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시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하면서 자료도 그렇더라고요
중요하다고 모아뒀는데
한번 들춰보지도 못하고
몇 년 그대로 있다가 버려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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