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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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마음자리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너무나 주관적이라, 객관적으로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말하기가 참 어렵다.
내 기억 속의 아픔은 너무 약해서 남이 들으면 그 정도가 뭔 아픔이냐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러나 내 속의 아픔이었고
그 아픔이 내 가슴에 옹이들로 박혀있어, 이제 새해와 더불어 그 옹이들을 가슴에서 빼버리고자 한다.
옹이 첫째 <쇠고기 국과 오징어>
밥상에 하얀 소고기 비계덩이들이 동동 떠다니는 빨간 쇠고기 국이 올라오면 우리는 우리 형제들 중 누군가의 생일이 그날임을 알았다.
요즈음이야 그 비계덩이를 다 가려내고 먹겠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쇠고기와 함께 그 하얀 비께덩이들을 더 많이 얻어오시기 위해
애를 쓰셨다. 어머니 눈엔 그게 영양 덩어리로 보였기 때문에...
중학생이던 어느 나의 생일.
"익아..."
"예?"
"오늘 니 생일인데 쇠고기 국 끓여줄 돈이 없다..."
머리를 굴렸다. 형제가 여럿이다보니 뭐든 한가지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다. 계란 찜도, 김도, 오징어도...
"어무이~ 오징어 한마리만 사주이소. 쇠고기 국 대신..."
"와? 그거 묵고 싶나?"
"예~ 대신 내 혼자 다 묵게 해주이소.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중학생이면 이미 철이 들고도 남을 나이였는데...어찌 그런 철부지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하여간 나는 소원대로, 저녁 무렵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연탄 불에 나만의 오징어 한마리를 구웠다.
한마리를 나 혼자 통째로 다 먹을 동안 아무도 나누어 먹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날 드디어 나는 처음으로, 소원하던 오징어 한마리를 혼자서 발부터 머리 끝까지 입 안에 피멍울이 생기도록 다 먹었지만...
그 장면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옹이로 남을 줄을 몰랐다.
내 가슴의 옹이야 이제 희미해졌지만, 어머니 가슴에는 아직까지 옹이로 깊숙히 박혀있지 싶다.
옹이 두째 <공납금>
누구에게나 있는 기억이 아닐지...
교무실 앞에서 몇번을 서성거렸다. 종례가 끝난 직후라 선생님들 여러분이 모여서 한가롭게 말씀들 나누고 계셨다.
고등 1학년. 국민학교 1학년 때 집을 판 이후 8번의 이사 끝에 드디어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 융자를 많이 끼고 산 집이라 집으로 들어오는 돈이란 돈은 거의 융자를 갚는데로 빨려들어갔다.
그러다보니 공납금을 제달에 낸 적은 한번도 없고, 늘 한 두 달을 미루어서 냈다.
선생님이 내일까지 미룬 친구 중에 내일까지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지만 들지 않았다.
아침에 아버지 봉급이 며칠 늦어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손을 들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좀처럼 혼자 계시지 않았다. 계속 이 책상 저 책상 옮겨다니시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셨다.
교무실 문 앞에서 몇번을 망설이고 서성대다가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봉급이 제발 오늘 나왔으면...
다은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목이 메인 채 넘어가지 않는 밥을 몇 술 넘기고 간 학교의 조회 시간.
"약속을 못 지키면 미리 말하라고 했잔아 임마~"
출석부로 머리를 몇 대 맞는 동안 나는 정말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내 공납금만 따로 구해 오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잊어버렸을 나만의 옹이였다.
옹이 세째 <닭고기와 쇠고기>
재수시절 가뜩이나 부모님께 죄송한 판에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못견디게 아파 받은 수술이라 속에 염증이 생겼다. 은행 융자는 여전히 우리 식구들의 발목을 붙잡은 채
놓아주질 않은 상태였고, 고름제거 치료를 하던 대학병원의 레지던트가 빨리 고름을 제거하고 상처가 아물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했다.
"익아~ 엄마가 고기 사왔다 많이 묵어라~"
상위에 놓인 통닭 한 마리를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기려들면 어머닌...
"니 다 묵어라~ 어여 묵고 빨리 낫아라~"
다음 치료 날,
"와 이래 진도가 안나가노? 고기 묵었더나~?"
"닭고기 묵었심더..."
"닭고기 묵어가 되나~ 쇠고기 묵으란 말이야~ 쇠고기~"
"......"
"알았나?"
"......"
내 속에 옹이로 그냥 남기고 말 걸...그 날 저녁에 어머니에게...
"쇠고기 묵으라 캅디다. 닭고기는 잘 안아문다고..."
난감하고 미안해 하던 어머니의 그 표정. 옹이로 내 가슴에 박혔다. 어머니 가슴엔 더 깊이 박혔을 것이다.
이제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상 가난을 포함한 모든 아픔들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웃으며 되뇌이는 추억거리로만 남지만 가슴 한구석 옹이처럼 박혀
쉬 지워지지는 않는다.
내 가슴에 남은 옹이는 받지 못한 아픔으로 생긴 옹이라 쉬 세월의 흐름에 빠져버리고 이젠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있지만,
어머니 가슴에 남은 옹이는 주지못해 생긴 옹이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일만 떠올리면 언제나 그 아픔 그대로 살아나는
옹이가 되고 말았다.
벌써 구순을 넘어서 이젠 경증 치매까지 앓고 계시는 어머니...
금방 하셨던 말 또 하시고, 약을 어디에 두셨는지 잊어버려 하루 내 약 찾으신다고 분주하신 어머니.
옛일들은 또렷이 기억하시는데도 최근의 일들은 쉬 잊어버리시는 어머니의 치매.
그 치매가 어머니 가슴에 박힌 옹이들만 골라서 빼버리는 치매이면 얼마나 고마울까...
어머니 제발, 제가 돌아가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올 해는 막내가 꼭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어머니...
댓글목록
마음자리님의 댓글
허락도 나기 전에 지게꾼님 귀한 사진에 글 붙였습니다.
지게꾼님 양해 부탁드리며, 감사드립니다.
다연.님의 댓글
마음님 한숨자고 일어나 컴을 열었네요
요즘 마음님과 지게꾼님의 글에 한층
잼납니다 옹이는 누구나 다 있을거네요
마음님의 옹이는 우리세대 모두의 공감이
아닐까나요 저도 옹이는 많지만 먹을거리엔
별로 기억이 없네요 쇠고기가 귀할때도 어머님은
풍로에 석쇠놓아서 지글지글 쇠고기를 구워주신
그맛이란 ~~어머님께서 공주로 키워주셨는데
그런 어머님께 넘 불효만 한것같아 그게 옹이로
넘 가슴아프네요 당뇨신 어머님 병원 모시고 갈때면
바쁘다며 짜증도 많이내며 급히 운전했던 그때
편찮으신 어머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고
글구 화장을 싫어 하셨는데
마지막엔 화장 하라신다고 화장을 한
모두가 요즘 운전해가면 문득문득 생각하니 가슴 미어지게 하네요~~
늘 과잉보호하시는 어머님께 청개구리로 살았으니요
마음님의 옹이빼기에 제 옹이도 풀어놓네요~~에혀~~
주저리 쓰다보니 댓글이 넘 길었다 그치요~~
마음자리님의 댓글의 댓글
옹이 이야기로 서로 기억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사랑도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보니
위쪽 사랑은 잘 못 느끼게 되고, 뒤늦게 그 잘못들이 옹이로 남게되나 봅니다.
다연님, ㅎㅎ 저는 글도 긴 것 좋아하고, 댓글도 긴 것 무지 좋아합니다.
지게꾼님의 댓글
마음자리님 아침에 일어나 컴을 켜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나 말고도 또 옹이에 의미를 부여하신 분이 계시구나!
그런데 사진을 보곤 어~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인데...
글을 읽어 내려 갔습니다.
마음속에서 뭔가 뭉클뭉클 이리치고 저리치는 느낌.
마치 담배를 한 대여섯대 달아 줄담배를 피운 듯한 느낌.
특히 받지못한 옹이는 쉬 빠져 훗날 추억이 될수도 있지만
주지못해 생긴 옹이는 평생을 간다는 그 말씀이 그 어떤 시귀절보다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사연에서 저는 그만 냉장고 문을 열고 탁배기 한통을 꺼내
다 마시고 말았습니다.
저역시 어제 큰집에 계시던 치매끼가 있는 노모님이 집에 왔다 형님이 모셔 갔는데
보내며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과 노안의 눈빛.
나는 기다시피 겨우 일어서는 어무를 보며 말했습니다.
어~무 돈있소!
돈이 있어야 정신 돌아왔을때 탁배기라도 한병 사묵을거아요!
그리곤 주머속에 있는 돈을 죄 끍어 뚤뚤말아 손에 쥐어 주어 보냈습니다.
잡은 손은 앙상한 뼈 뿐이였읍니다.
옹이 사진 한장을 통해 뜻밖에 가슴 뭉클한 아침을 열어 봅니다.
마음자리님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의 댓글의 댓글
지게꾼님,
허락 전에 사진 사용한 것, 고맙고 미안한 일인데
마음까지 나누어주시니 더 고맙습니다.
보리산(菩提山)님의 댓글
옹이,!
그것을 다시말해 "恨"이지요,
전쟁, 가난 등 극한의 어려움을 많이 참아낸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많은 한을 간직한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悔恨의 눈물을 흘린적이 많치요.
마음자리님의 글 크게 공감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음의 옹이와, 빠지지 않는 큰못(大釘)이 박힌채 살아 갑니다.
마음자리님의 댓글의 댓글
참 한 많은 한 민족이지요.
역사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으로 점철되지 않은
시대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작은 나라...
언제쯤이면 한 없이 훨훨 세상의 중심이 되는 때가 오려는지...
사노라면.님의 댓글
어머니속을 많이 아프게 했던 딸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니 어머니 마음을 알게 되었는데
제 자식 키우느라 바빠서 마음뿐으로 지내다
철들어 어머니 챙기려 드니 어느새 돌아가실 날이 다가왔든...
손잡고 단둘이 여행 한번 못 다녀온 후회
오래 오래 깊이 새겨진 상처로 남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보모님께 못한 옹이가 제일 많을듯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 하십시요
마음자리님의 댓글의 댓글
그런 후회가 찾아오면 저는 이렇게 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사랑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 거슬러 사랑하긴 참 어렵다.
물처럼 나도 아래로 아래로 사랑해야지.
그럼 나에게 사랑 주신 윗물 분들께서 이해하시지 않을까...이렇게요.
산그리고江님의 댓글
3대독자 아들이라고
딸 둘을 재끼고 늘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
철부지 아들 당연 한것으로 받아드려 억지가 이만 저만
철 들어 정신 차리니 이미 어머니는 ....
자식들 가슴에는 후회의 옹이가 다들 있을것 같습니다
건강 하십시요
마음자리님의 댓글
시대도 시대였지만, 3대 독자 아드님이셨으면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싶습니다.
아마 자당어른께서는 3대 독자를 낳으신 그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별은☆님의 댓글
마음자리님 ~
마음이 답답해 오는듯 합니다
내 삶에 옹이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이
나에게도 많은 옹이들이 진을 치고 지나갓습니다
이제 그 옹이들이 편안히 자리잡으려 합니다
제발 더큰일 없이 편안한 나를 살게 하려는
하늘의 움직임이 보이느듯 하답니다
새해에는 그 옹이들도 예쁘게 테를 두르면서
살아가는 날이 되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늘 건강 행복하세요~
여농권우용님의 댓글
공납금 내지 못하고
머리 맞든 추억들 누구나 있습니다.
가슴아프고 슬픈 추억이지만 그때가 그립습니다.
고운 작품 즐겨 보았습니다.
새해 맑은 날들의 계속입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우시기를 빕니다.
찬란한은빛소녀님의 댓글
마음자리님,
늘 따사롭게 저의 게시물로 오셔서 고운정을 두곤 하셨는데..
오늘은 잠시 머물며 님의 고운정에 감사드립니다.
올한해도 무탈과 평화로움으로 축복의 한해가 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지금도 아쉽고 후회 되는것은
아주 조금씩 이라도 대화를 나누었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슴속에 품고 가셨을 옹이들이
지금 그대로 이 가슴에 옮아온듯 답답함이 더 많아지는 시간입니다
삶은 연습이 없다는것을 자주 실감 합니다
건강 하신 날들 되시어요 마음자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