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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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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917회 작성일 16-06-10 00:53

본문





     

    야간비행 / 안희선


    칠흙처럼 어두운 밤에 더듬이 없는 비행.
    계기판엔 이미 모두 붉은 불.
    돌이킬 수 없는 착오처럼 점멸되는 그것들.
    작동되지 않는 조종장치와 기능을 상실한 관성항법장치.
    일상의 안도(安堵)처럼 준비되지 않은 낙하산의 후회.
    느낌과 제로시계(視界)에 의한 곡예비행.
    지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나,
    추락을 준비하는 이 순간은 차라리 담담한 침묵.

    (너무 큰 절망은 신비하게도,
                          또 다른 시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창문 스쳐가는 구름처럼 지나온 삶이 눈 앞을 흐른다.
    기내의 잔인한 경고음은 아까부터 고막을 뒤흔들고.
    원래 이런 비참한 여행을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출발점에 입력된 운명 프로그램의 오류(誤謬)는
    어느새 비행시간을 非現實에서 깊은 현실로 만들고
    그 뒤바뀐 시.공간 속에서 빨간 불켜져 있는 예정된 파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겁에 질린 목숨들은 속수무책.
    어둠 같은 절망 앞에 희망은 그저 팔짱만 끼고.

    어쩌란 말인가.
    선택의 여지도 없는
    이 드넓은 공간 한가운데서
    아무 것도 모르는 운명처럼
    글라이딩하는 기체는
    돌아갈 항로조차 없는데.

    삶의 파편은 흔적으로나마 대지 위에 뿌려질까.
    죽음 지난 시간 속에 고통은 무엇이 되어 있을까.
    혹여, 회한(悔恨)의 기억으로나 남아 있을까.


    - 경고문 -

    여러분이 탑승하는 이 비행기는 미사일 공격에 의해
    추락이 예정된 비행기 입니다
    사망 . 상해 및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승객은
    탑승을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 그 언젠가, 한국行 비행기 안에서 지금 기류불안정과 함께
    <캄차카반도>를 지나고 있단 기장의 아나운스멘트에 문득
    (구)소련의 수호이 전투기에 격추당한 KAL 007편이 떠올랐다

    이 글은 그때, 기내에서 끄적여 본 것

    KAL機 격추사건 이후, <북태평양항로>로 변경했던 航路를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에 따라 유류비용절감을 위해 다시
    <러시아 캄차카반도항로>로 복귀했다



    


댓글목록

핑크샤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핑크샤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저 끄적여 본 글이 제겐 우리네 인생을 정의하는 훌륭한 시로 읽혀 집니다... 흔히 운이 좋아서..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운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말하는게 맞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고등학교때 입시 스트레스로 친구들과 주역하는 분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친구와 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얻을 것인데, 친구는 그 날개로 하늘을 날 것이고, 저는 날개를 펴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왜냐고 묻자, 본인의 의지라고 답했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날개를 펴고 날고 있더군요, 그래서 가끔은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곤 한답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에는 운명론을 그다지 비중있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 즉, 정해진 운명이 있다기보다 운명이란 건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입장

하지만, 요즈음은 저 자신 운명론에 기울어진다는요 ..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몰라도

(특히,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뜻밖의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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