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시인 ㅡ 섬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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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을 이달의 초대시인 ― 정윤천
낯선 계절의 문턱을 밟을 때마다, 마음은 가장 먼저 詩의 물가로 갑니다. 시마을 이달의 초대시인으로 정윤천 시인을 모십니다. 정윤천 시인은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13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등 꾸준한 성취로 자신만의 서정을 확장해 온 시인입니다.
시집으로는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발해로 가는 저녁』, 『점등인의 별에서』 등이 있으며,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 시선집 『그린란드 바닷가에서 바다표범이 사라지는 순서』도 펴냈습니다. 또한 계간 『시와사람』, 『시의 시간들』 편집 주간을 맡아 시의 현장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매일뉴스 (최용대 발행인)가 예술 작가들의 열악한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문학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제정한 제1회 '아름다운 시집' 창작지원금 대상자로 선정, 3천만원의 상금을 받아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정윤천 시의 매력은, 질펀한 남도 서정을 바탕으로 세계의 중심을 큰 사건이 아니라 작고 투명한 징후로 옮겨 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눈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에는 눈물보다 작은 물방울이 맺히고, 등대 아래에서 “점등인”이라는 말은 한동안 따뜻한 명사로 남습니다. 바닷가의 물소리, 별들이 돌아오는 저녁, 공터보다 어두웠던 강물과 기차와 술병—이 이미지들은 장식이 아니라,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사유의 장치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섬」 외 9편에서도 그 감각은 또렷합니다. 「사랑의 돈키호테」는 엉뚱하고도 아름다웠던 이름 하나를 통해 ‘그리움’의 걸음폭을 넓히고, 「꽃이 피는 나타샤」는 ‘나타샤’를 이름 너머의 존재로 밀어 올리며 세계의 여러 장면을 한 번 더 환하게 만듭니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가 말하는 사랑의 속도, 「어린 시인을 위한 칠판」이 건네는 예술의 윤리, 「사랑이 와서 가져가라고」의 눈 내리는 철로, 「우체통은 빨간색이었다」의 빨갛게 씻긴 하루, 「건반 하나」의 낡은 피아노 속 살아 있는 울림까지—이와 같이 정윤천의 시는 다정다감한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 일상에 숨어 있던 감정의 방향을 따뜻한 쪽으로 돌려 세웁니다.
시마을 가족 여러분께서도 이 작품들을 따라가며, 각자의 하루에 놓여 있던 물빛과 별빛, 그리고 오래된 음악 같은 문장들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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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시 10편]
섬 외 9편
정윤천
이곳에는
아직
눈물이 도착하지 않았고
눈물보다 작은
물방울이 하나
내 가슴의 한가운데에 맺혀 있었다.
점등인의 별에서
눈물이 많아졌다는 저녁이
해안선 근처를 걷고 있었다 등대 아래에서
시詩를 쓰다가 온다고 했다
너라는 말이 멀어 보여서 내게도
울 뻔했던 빗소리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은 점등인이라는 말이 따뜻했다
휘파람 소리를 맡겨놓고 간 계절은 지나갔어도
별들은 시간을 지켜 찾아오고는 하였다
한때는 공터보다 어두웠던
강물과 기차와 술병이
별들 사이에서 밝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방향보다 먼데서 오는 일이었다
<밤>
풀잎을 괴롭혔던 바람의 발길질도
그러나 물러나게 될 것이다
죽음처럼 캄캄했던 밤도 그랬으니까
너에게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려는 동안
바닷가에서 만난 물소리 속으로도
별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었다.
사랑의 돈키호테
라만차의 풍차들도
녹슨 무릎의 여행을 준비하면
누군가에게로 편지를 쓰게 하는 밤이
찾아오기도 하였다네
새소리가 와서 깨우는
창문들이 밝아져 올 때까지
밤새 다듬었던 문장 속의 그리움이
한 뼘이나마 길어나 있었기를
더 늦기 전에
로시란테의 발자국 뒤를 따라가 보고 싶기도 하였다네
지금도 내 마음속에 엉뚱하고도 아름다웠던
누군가의 이름이 하나 전해져 내려왔던 까닭은
온티에일의 거친 벌판을 혼자서 건너가는
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네.
꽃이 피는 나타샤
꽃들은 모두 나타샤에게서 태어나지
나타샤는 이름이 아닐 수도 있어 총을 든 군인의 동작이거나
수도원의 뾰족한 종탑 아래일 수도 있었지
분명한 것은 나타샤가 나타난다는 데에 있어
그도 어차피 1월에서 12월 사이에 태어났을 거니까
해바라기처럼 길쭉한 걸음일 때도 있지
나타샤의 말투를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 보다는 나타나기를 즐기는 나타샤
무거운 짐을 태운 트럭이 지나갈 때
공장에서 나온 남자들이 술집 안의 난로를 향해
함부로 이거나 세차게 쳐들어 갈 때에도
나타샤는 조금씩 길어나지
그것은 나타샤만의 좋은 버릇 중의 하나
입술에 연필을 문 정원사 아저씨가
나뭇가지에 빨간 새집을 매다는 커다란 집의 담장 안에서
나타샤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뛰어노는 장면을 상상해 봐
지금까지 보다는 아름다워지게 될 거야
꽃이 피는 나타샤가 여기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골목의 담장 위에는 장미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있었다
배경 음악에 어울리는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푸른 지붕 아래의 건물 안으로 구두 소리만 남겨 놓고 사라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저 안에서는 두 사람의 긴 키스가 이어질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 사랑은 영화가 끝나기 전에 미리 이루어져 있곤 하였다.
어린 시인을 위한 칠판
이 별에 잠시 머물다가 간 이름이 쓸쓸했을 화가의 이름입니다
맨 처음 여자의 몸에 음모陰毛를 그려 넣은
‘진실의 거울’이었어요
언제부턴가 나의 가슴 속에도 어린 시인을 위한 칠판 하나를 마련해 주고 싶었답니다
고야의 초상을 거기 그려 넣어 볼래요 종달새를 그리지 않고 종달새의 울음을 적으려고 합니다 사랑도 깊게 안으면 천천히 청력이 사라져 가요 들판의 벌레 소리들이 닫히면 옹달샘의 고요가 열리겠지요 고야도 귀머거리의 말년을 그림으로 재우며 지냈답니다 눈이 내리는 밤과 아무도 오지 않는 오솔길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져요 재판소의 판관들에게로 내가 쓴 음모의 시들을 모조리 압수 당하고 돌아왔던 밤에도 눕지 않을 거예요 어린 시인을 위한 내 초록의 칠판 위에는 고야의 지문을 새겨 넣어 볼 거예요 이 별에게로 남겨 놓고 돌아갈 내 이름의,
시 한 편을 그려놓고 떠날 거예요.
기타라는 이름의 순간과 같이
어떤 소설의 제목에 목요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만 하였던 운명이었듯이
나뭇잎 냄새가 뒤따라왔던
골목 속으로 지나온
오후 같거나
그러니까 사랑도
종아리가 길고 가느다란 하였던
기타라는 발음의
순간과 같이.
사랑이 와서 가져가라고
1
눈이 내린다
외로울 때
춥지 말라고
눈이 내린다
가난할 때도 울지 말라고
눈이 내린다
2
발목보다 더 가느다란 두 줄의 철로 위로
지구보다 더 커다란 기차가 지나갈 때
눈은 내린다
이 세상의
온갖 철거덕거림들을 싣고 떠나는
기차의 지붕 위에도 눈은 내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까워져 가는 이들을 위해
눈이 내린다
서로의 품에 안길 때 포근하라고
자꾸만 자꾸만 눈이 내린다.
우체통은 빨간색이었다
쓰다가 그쳐놓은
시를 꺼내 보았다가 눈물을 비쳤다던 사람이
다녀갔다고 하였다
일이 생겨 집을 잠시 비웠다가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기후에는
그가 사는 도시의 끝에서도
종아리가 물에 젖은
바닷가가 지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비가 그친 골목 속으로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한 대 들어서고 있었는데
시를 찾아내어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곳을 찾아오고 가며 있었다
우체통이 다른 날보다 빨갛게 씻겨 있었다
걸음을 한 움큼 집어 들어
너에게로 가까워지고 싶었다
눈물이 많이 매웠는지
우체통의 얼굴도 빨간색이었다.
건반 하나
골목 끝에 내다 놓은
피아노 한 대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았는데
단발머리 소녀 하나가
가던 걸음을 멈추더니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건반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 주었는데
피아노는 낡았지만
그 안에서 살아있는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의 등 뒤에
손이 잘 닿지 않는 견갑골 언저리에도
사랑하는 사이만이 누르기 쉬운
조그마한 건반 한 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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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전남 화순 출생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발해로 가는 저녁』, 『점등인의 별에서』 등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 시선집 『그린란드 바닷가에서 바다표범이 사라지는 순서』
2018년 지리산문학상 수상, 제1회 '아름다운 시집' 창작지원금 수혜(상금 3천만원)
계간 『시와사람』, 『시의 시간들』 등 편집 활동(편집주간)
댓글목록
하트님의 댓글
시에서 각각의 향기가 ....
허벅지 안녕^^
페이스북에서의
미소가 (깔깔깔이지만)ㅋㅋ
넘 웃어서 배가 하하하
음..죄송하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고요
그런데요....섹시한 느낌은 뭐지??
이궁--::
애인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