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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하늘나는고양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26-01-19 20:12

본문

우리는 끝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끝을 말하는 순간

모든 문장이 과거형이 되기 때문에


너를 보지 않겠다고 정했다

보지 않는 동안

너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남았다


사랑은 늘

설명보다 먼저 도착하는데

나는 설명을 금지한 채

도착만을 반복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들이 있다

찢지 못한 종이의 가장자리에서

시간이 멈추지 않고

서서히 얇아진다


후회는 투명하다

가득 찼는지 비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나는 잔을 내려다보는 법만 배웠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을 묘사하지 않겠다

묘사하는 순간

기억은 나를 대신해 말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말해버린 사람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어긋났다

왼손과 오른손처럼

같은 몸에 붙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너를 잃어버렸을 때

나는 이름을 불렀고

돌아본 얼굴들은

모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사랑이란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놓지 못한 채

계속 쓰이는 상태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용서를 결심하지 않는다

결심은 언제나

하루 만에 무너졌기 때문에


다만

미워하지 않는 쪽에

몸을 두고

오늘을 넘긴다


마지막 문장이

어떤 말로 끝나든

이 페이지는 아직

접히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너를 향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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