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끝이 먼저 온 사람이었다 /고1 > 청소년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청소년시

  • HOME
  • 창작의 향기
  • 청소년시

(운영자 : 정민기)

☞ 舊. 청소년시   ♨ 맞춤법검사기

 

청소년 문우들의 전용공간이며, 1일 2편 이내에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시스템 오류에 대비해 게시물은 따로 보관해두시기 바랍니다

  타인에 대한 비방,욕설, 시가 아닌 개인의 의견, 특정종교에 편향된 글은 삼가바랍니다  

너는 끝이 먼저 온 사람이었다 /고1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하늘나는고양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64회 작성일 26-04-06 03:00

본문

너는 끝이 먼저 온 사람이었다


너는 끝이 먼저 온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내일을 약속하며 사랑을 시작했지만,

너는 남은 시간을 먼저 세어본 뒤에야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네 웃음은 자주 늦었다.

웃고 있는 얼굴인데도

어딘가 한 겹쯤 닫혀 있었고,

나는 그 닫힌 부분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상하다.

열리지 않는 마음 앞에서 더 오래 서 있고 싶어진다.

들어갈 수 없는 방일수록

안에 무엇이 있는지 끝내 알고 싶어진다.

나는 네 침묵을 오해했고,

네 망설임을 다정함으로 믿었다.

믿는다는 건 언제나

자기 쪽에서 먼저 완성해버리는 일이어서,

나는 네가 끝내 말하지 않은 것들까지

혼자 사랑의 문장으로 번역하며 살았다.


네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세상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창밖의 신호등은 제 순서대로 색을 바꾸었고,

카페 유리잔에는 물방울이 맺혔고,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그 평범함이 너무 잔인해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시간은 무너지고 있는데

세상은 왜 저토록 정확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지.


너는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더 깊어지기 전에 밀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이상하게 울지 못했다.

슬픔보다 먼저 든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향해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추한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너는 아픈 사람이기 전에

나를 속인 사람이기도 했다.

네게 남은 시간이 적다는 것,

그래서 나를 오래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처음부터 끝을 정해둔 채

나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

그 모든 사실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침묵이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끝내 이해 쪽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사랑은 늘 함께 있고 싶다는 말로 시작되는데,

너와의 사랑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쪽으로만 깊어졌다.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멀어질 날짜를 또렷하게 갖게 되었다.

너는 내 손을 잡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 네 손끝에서

작별의 온도를 먼저 느꼈다.


어떤 사람과의 이별은

다투고 돌아서며 시작된다.

마음을 다 써버린 뒤의 이별은

차라리 덜 아플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와의 이별은

아직 사랑이 한창 남아 있는데도

시간이 먼저 우리를 데려가는 방식이었다.

다 쓰지 못한 마음이

몸 안에 남아 썩어가는 느낌이

그토록 오래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너는 끝까지 다정한 쪽에 서 있으려 했다.

내가 너를 미워해도 된다고 말했고,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잊겠는가.

한때는 내 전부였던 사람을.

내가 가장 사랑했지만

동시에 가장 원망했던 사람을.


나는 한동안

네가 남기고 간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약봉지 냄새가 옅게 밴 셔츠와

한 모금쯤 남아 있던 물병과

끝내 읽지 못한 책갈피의 페이지와

네 체온이 식은 뒤에도

이상할 만큼 천천히 식어가던 계절을.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곧장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미움도, 연민도, 원망도

한 몸처럼 얽혀

오래 나를 붙들었다.

나는 네가 불쌍해서 운 것이 아니라,

네가 너무 미워서도 아니었다.

끝내 너를 다 미워하지 못한 채

계속 사랑하고 있는 나 때문에

더 오래 울었다.


배신은 늘 악의로만 생기지 않는다.

어떤 배신은

상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떤 이별은

서로를 버려서가 아니라

끝내 함께 살아남을 수 없어서 찾아온다.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네가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말했다면

나는 덜 아팠을까.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결말을 알면서도

기꺼이 같은 사랑을 다시 선택했을 것이다.


사람은 종종

영원할 것 같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사라질 것 같아서

더 깊이 사랑하게 되니까.


그러니 너는

내게 가장 짧은 사람이었고,

가장 오래 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네가 없는 계절을

혼자 건너는 법을 조금 배웠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직도

문득 네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그러면 대답 대신

가슴 안쪽이 조용히 베인다.

아무도 모르게,

오래전 이별이

방금 끝난 것처럼.


아마 사랑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끝난 뒤에야 비로소

사람 안에서 완성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도 끝내 떠나지 못해서

남은 사람의 평생을

조용히 앓게 만든다.


너는 내게

시한부였고,

배신이었고,

이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그 사랑을

불행이라고만 부르지 못한다.


가장 아픈 것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

분명히 있었으므로.

댓글목록

Total 2,089건 1 페이지
청소년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65 07-07
2088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 04-26
2087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 04-26
2086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 04-25
2085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 04-25
2084 오상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 04-24
2083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 04-23
2082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 04-23
2081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 04-19
2080 종이에묻어버린물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3 04-19
2079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 04-19
2078 김민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 04-17
2077 초보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 04-16
2076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 04-16
2075 종이에묻어버린물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4-15
2074 Interrob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 04-15
2073 종이에묻어버린물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 04-14
2072 오상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 04-12
2071 DaeSW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 04-11
2070 하늘에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 04-09
2069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 04-09
2068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 04-09
2067 종이에묻어버린물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 04-06
2066 하늘나는고양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 04-06
열람중 하늘나는고양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 04-06
2064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 04-05
2063 wq2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 04-05
2062 유민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 04-05
2061 종이에묻어버린물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 04-04
2060 6월의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 04-0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