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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은 왜 러시아 통합의 상징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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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1회 작성일 25-09-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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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시킨은 왜 러시아 통합의 상징이 됐나 ]



서울 시내 한복판에 ‘푸시킨 플라자’가 있다.
그곳에 ‘푸시킨 동상’이 있다.
2013년 푸틴 대통령 방한 때 세운 동상이다.
크지 않은 입상 하단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하는
시가 새겨졌다.
당시만 해도 젊고 경쾌하던 푸틴이
한·러 양국의 문화적, 인도적 상호 교류를 기원하며 헌화했다.


푸시킨 동상을 세우고, 푸시킨 이름을 붙이고,
푸시킨 메달을 수여하고, 푸시킨 시를 인용하는 일이
러시아에서는 흔한 공공 행사다.
시대와 체제를 막론하고 푸시킨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국가 정체성과 통치 이념을 대변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기능해 왔다.

19세기 후반의 보수·진보 지식인부터
레닌, 스탈린, 푸틴, 
그리고 일반 국민 가릴 거 없이
‘푸시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슬로건 앞에서 일치단결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있다지만,
이처럼 절대적인 국가 통합 수단은 되지 못한다.
한국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누가 있을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BTS…?


‘왜 푸시킨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푸시킨이라는 아이콘을 완성하기 위해 전력해 온 

소련의 전체주의 문화 기획을 언급해야 한다.
푸시킨은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고, 기념한 덕에
오늘의 국민 시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푸시킨 문학이 왜 위대한가는 몇 줄로 정리하기 힘들다.
번역된 푸시킨은 특히나 잃는 것이 많은지라,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투르게네프에게 훨씬 못 미친다.
수많은 명작 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 편이
국민시처럼 애송되는 현상은
오늘의 한국 현실에 관해서도 암시하는 바가 있다.
그만큼 ‘삶에 속았다’는 느낌이 일반적이고,
그만큼 위로와 치유를 갈구한다는 말 아니겠는가.
사실 다른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다.


초년 시절의 혁명 열기와
젊은 날의 낭만적 포즈를 흘려보낸 후,
완숙기의 푸시킨은 역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냉철한 역사가의 자세로 사료를 조사하고, 답사 다니고,
증언을 수집했다.

왕권 찬탈의 드라마인 ‘보리스 고두노프’,
페테르부르크 대홍수를 다룬 서사시
‘청동마상’, 푸가초프 반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
‘대위의 딸’이 대표작이다.

혹자는 진보주의자 푸시킨이
전제주의에 맞서 쓴 혁명적 역사물인 양 해석하지만(유시민 작가가 한 예다),
그건 흘러간 소비에트 시대의 이념적 독법일 뿐이다. 푸시킨의 역사관은
변증법적이지 않다.
그의 역사적 판단력은 이념이 아니라
인간사 본질에 대한 통찰이랄까,
사리 분별의 균형감에 바탕을 두기에 결코
단 한명의 주인공, 단 하나의 진실,
단 한 쪽의 관점에 매이는 법이 없다.


가령 청소년용 성장소설로 치부되는 ‘대위의 딸’에서, 주인공은
민중 반란 두목 푸가초프와 예카테리나 여왕이라는
두 통치자 사이에 선 어린 청년(16세)으로 설정된다.
귀족 장교인 그는 신분상 군주(예카테리나 여왕)에게 귀속된 몸이다.
그러나 그의 목숨은 ‘가짜 군주’인 푸가초프 손에 달려 있다.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본연의 의무인가 당장의 안전인가.
잠시 갈등하던 그는 목숨을 걸고 ‘명예’를 지키기로 한다.
그리하여 목숨과 명예 모두 건진다.


푸가초프도 갈등한다.
자기편이 되기를 거부한 청년을 살려둘 것인가 죽일 것인가.
동지들은 죽이라고 하지만,
그는 살리는 쪽을 택한다.
언젠가 청년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떠돌이 시절 얻어 받은 토끼털 외투와 술)를 기억하는 데다,
그의 가상한 용기에 마음이 간 때문이다.

예카테리나 여왕도 마찬가지다.
반란자와 너나들이했던 귀족 청년을
벌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일벌백계로 다스리고자 작정했건만,
여왕은 용서를 택한다.
‘정의가 아니라 자비’를 구하는
주인공 약혼녀의 간원에 귀 기울여
‘죄인’의 사정을 역지사지 들어준 결과다.


그들은 모두 갈림길에 서 있다.
때로는 생과 사의 갈림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다.
황제가 되었건 참칭자가 되었건,
귀족 청년이건 농노 하인이건,

충직한 용기,  말과 행동의 일관성,
그리고 인간다운 도리를 원칙 삼을 때
그 사람은 명예롭고 숭고해진다.

반대로 사심과 질투, 복수심으로
매 순간을 저울질하며
잔인해지거나 비굴해지는 사람은
결국 명예를 잃고 졸렬해진다.

푸시킨의 역사관은 곧 인간관이다. 


‘명예’는 19세기 귀족 계층의 문화 코드였다.
그러나 진짜 명예가 무엇인지를 알아
삶의 원칙으로 삼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계층과 신분을 막론하고, 무척 어렵다.

그래서 푸시킨이 소설에 인용한 격언이 이것이다.

‘옷은 새것일 때부터 아끼고,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야 한다.’


     ( 김 진 영  /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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