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파라솔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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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파라솔
김상미
진짜 여자가 되려면 파라솔이 필요할 거야
파라솔은 햇빛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반쯤은 여자들을 눈부신 회상의 멜로디로 만들어 주지
나보다 더 먼저 순결을 잃은 언니들이
대성당의 그림자처럼 매혹적인 손길로
내게 건네준 푸른 파라솔
나는 그 서늘하고 완곡한 색채에 취해
그만 통금을 놓쳐버리고
새벽녘 광복동 거리에서 하염없이 다가올
불볕더위를 기다렸다
파라솔이 펴지고 접혀질 때마다
끈적이는 눈물 같은 불볕더위에 내 어깨끈은 자주,
은밀히 흘러내리고
그때마다 나는 능숙한 용접공이 되어 언니들의 욕망을
보호받지 못한 내 욕망에 아주 잘 용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그늘들을 친한 벗으로 끌어들였던가
나보다 더 먼저 여자가 된 언니들이
가슴 절절하고 애잔한 맨발로 아슬아슬
삶이라 불리는 그 수수께끼 강을 건너다니며
두 손에 쥔 짧은 행복을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파라솔처럼 활짝 펼쳐 보일 때마다
나는 푸른 파라솔을 쓰고 하염없이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던
한 여인을 생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던
모네의 그림 속 푸른 파라솔을 쓴 여인
언니들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하고 내 엄마들 같기도 한
어떤 것으로도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너무나도 신비하고 놀라운 회상의 멜로디
그녀들의 뜨겁고 황홀한 피 냄새가
한 번도 내 눈을 떠난 적 없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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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당신』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 2003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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