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부 霜降 賦 /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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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부 霜降 賦
김부회
하루가 저물고, 그 곁에 귀퉁이 몰락한 가을이, 희끄무레 달이 밤을 지킬 준비를 한다 외곽부터 허물어진 계절에 걸쳐있는 늙은 감나무 가지 땅바닥에 손가락을 짚는다
배고픈 어둠을 뒤적거리는 들고양이 한 마리, 유리창 밖 몇 두름의 물방울이 또르르, 불투명 창 안쪽에 흐르다 고여 있는 견고한 적요
대수롭지 않게 던진 애인의 한마디 말처럼 달콤한 침묵의 비수는 삼키는 사람의 몫이다
딱딱한 귓속으로 한 세대 지난 유행가 몇 소절이 굴착기처럼 파고들 때, 다르거나 같거나 아무 상관이 있거나 없거나 디딜 것 없는 허공을, 수 닭 목처럼 비틀어 쥐어짜 보는 날, 날들
‘그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을 가졌는가?’* 질문 앞에 턱, 숨이 막혀버리는 온갖 과거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낳고 찌그러진 달의 면적만큼 달아난 파도가 되돌아오듯 내가 나를 끌어당기다 증발해버린 서로의 인력引力, 그 자리에 무작정이라는 관성의 빨대를 꽂았다
색과 공의 경계는 다만, 생각일 뿐
온당하게 저며 드는 피곤이
구름이 임신한 저 달을, 당구알 같은 저 달을
가을과 계절과 사람을
스리쿠션으로 겨냥해 보는 것이다
쓰레기통 속으로, 이미 망쳐버린 수묵화 한 점이 여지없이 골인하기 네 시간 전, 하루 치 분의 속된 치기를 혓바닥에 굴려보는 나만의 골방에,
멀리 새벽이, 꽃단장한 등롱을 들고 작정 없는 나의 무딘 부피를 침범했다, 그날
첫서리가 검게 내렸다
*함석헌의 골방에서 인용
[월간 모던 포엠 2017.0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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