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매를 펄럭이는 저녁 /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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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소매를 펄럭이는 저녁
양현근
얼결에 와이셔츠 소매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또르르 굴러서 책상밑으로
숨더니 도무지 보이지를 않네요 책상 밑을 수배해보지만 단추는 보이지 않고 묵은
먼지만 한 움큼 따라붙습니다 추신으로 동전 몇 개와 철지난 엽서도 묻어나옵니다
여미어지지 않는 소매를 펄럭거리며 반쯤 남은 하루는 출렁거리고 왼팔은 부끄러움을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세상의 눈치가 무뎌지기를 기다리며 왼팔목에 서늘한 지느러미를
그려 넣습니다 느린 강둑을 지나는 붉은 노을도 채워 넣습니다 그 저녁을 건너가는 꼬리
지느러미가 흐린 물살을 가르고 있네요 어느 새 발효된 저녁은 강둑을 지나며 내려앉는
졸음과 씨름중입니다 빈 소매가 펄럭거릴 때마다 조용하던 풀숲에는 소문이 일고 부풀어
오르던 반죽은 노릇하게 익어가는 중입니다만, 길을 잃은 단추는 어디쯤에서 둥근 몸을
말고 있을까요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17.4월호)
댓글목록
문정완님의 댓글

사소한 단추하나에서 건져올린 시가 대어입니다 무릇 시인의 눈은 사소한 것조차
사소하지 않게 바라봐야 한다.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