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슬러시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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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슬러시
조경희
별을 따다 달라고 했더니
구름을 담아왔네요
그대와 나 구름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늘물고기를 낚을까요 훨훨 나는 나비를 잡아볼까요?
구름위엔 새콤달콤한 과일이 주렁주렁
오늘의 날씨 맑음
오후 한때 소나기가 내릴 거라며 우산을 준비하라는
기상캐스터의 친절한 예보는 예상대로 빗나갔지만
우산을 펼치니 낭만적인걸요
그런데 왜 한여름에 눈이 내리죠?
유리문 밖을 지나는 사람들은 다른 행성에서 튕겨져 나온 파편처럼 우리를 향해 부러운 표정
지으며 뜨거운 빛의 스팩트럼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그대와 나를 태운 구름은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어요
눈 앞에서 흰 나비떼가 어지럽게 날아올라요
낚싯대를 들어올리니
시린 날갯짓이 서걱거려요
굳어버린 나비들이 수시로 형체를 바꿔가며 진눈깨비로 변하고, 눈앞에서 질척거리다 이내 물
이 되어 사라지는 동안, 얼음 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추출하지 못한 나비의 전언을
몸이 기록해요
돌곶이역에 우리를 내려놓은 구름은
알래스카로 뭉개뭉개 떠나버리고
우리의 계절은 초록빛 무성한 여름을 지나고 있어요
-시사사 2017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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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완님의 댓글

조근조근한 말투에서 번득이는 행간이 평범이 범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