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천민 / 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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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를 찾아서] 불가촉천민
불가촉천민 / 박기준 시인
강과 하늘 경계가 흐릿하다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그, 연속 촬영으로 찍은 사진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노을에 투명인간이 노출되었다
살아남고자 경쟁이 몸부림쳤다 세월이라는 비바람과 겨룬 그가 노쇠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숨소리 한번 크게 안 낼게, 느른히 숨만 내쉴게, 쇠약한 몸은 다락방에 던져진다
빌딩이 주인인 테헤란로 주인님에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척을 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색한 태도를 만났다
식당에는 여기요, 저기요가 키오스크 앞에선 노인이 투명인간이 되었다
파견노동자 노숙자 장애인, 당신이 궁금하지 않아 드러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 투명인간이 되었다
당신이 보이지 않아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내가 부르짖어도 경청은 희미한 옛사랑이다
*불가촉천민: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사성에 속하지 않는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
*대구신문 2023.11.12 기고
◇박기준= 2022-경기 노동문화예술제 수상(문학부문). 2022-한국 디지털 문학상 수상. 2023-국민일보 신춘문예 수상. 2023- 국제 지구사랑공모전 문학상. 2023-한국문학상 수상.
<해설> “강과 하늘 경계가 흐릿하다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그, 연속 촬영으로 찍은 사진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노을에 투명인간이 노출되었다” 진술된 1연은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불가촉천민이 곧 투명인간이며, 어쩌면 시인 자신이라는 암시이다. 살아남기 위하여 경쟁에서 몸부림쳤고 세월과도 겨루었지만 결국 노쇠하여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락방에 던져졌다. 그것도 비참한 대접 받는, 신분 이하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무도 알아보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이미지를 통해 그냥 제시만 하는 경우도 울컥한 시가 된다는 것,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마지막 한 행이자 연에서 던진 직관은 마치 번뜩이는 비수 같다. “내가 부르짖어도 경청은 희미한 옛사랑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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