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지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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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지
=이재훈
포도주를 마신다. 구릿빛 작은 잔들이 찰랑 부딪힌다. 열락으로 빠져드는 시간의 동맥. 당신과 약속한 피를 마시고 당나귀의 행보를 떠올린다. 고향에서는 아들이 아비를 죽였단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아이가 창궐한단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육이 유행이란다. 가뭄이 지나자 폭설이 내려 홍수가 난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 근질근질한 시간들. 성스러운 부패의 시간들. 기쁜 병의 시간들. 이곳은 세속적인 거주지가 아니다. 당신, 진리가 도처에 즐비한데 왜 이곳에 오셨는지요. 밤이 되어야 저 바깥의 문을 간신히 열 수 있다. 발정기의 암낙타가 침을 흘리며 내게 온다. 밤을 매도하지 마라. 이 길은 밤이 모든 이유다. 세속의 성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시간의 길목이다.
민음의 시 225 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 48p
얼띤感想文
시제 유형지流刑地는 구형九刑의 형벌刑罰 가운데 하나다. 죽을 때까지 유배지에 머무르게 하는 것, 그러나 간혹 감형되거나 사면되는 예도 있다.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장소가 멀고 가까움의 정도, 차등을 두었다.
시라는 맥락에서 볼 때 포도逋逃는 자기 나라에서 남의 나라로 도망친 것으로 넋(魂)의 이주다. 구릿빛 작은 잔들이 찰랑 부딪친다. 구천에서 보면 잔盞은 이승의 그릇이다. 그것은 찰랑 부딪힌 것으로 무엇을 담는 행위적 묘사다. 열락悅樂은 불교적 용어로 어떤 한 욕구를 넘어서는 크나큰 희열 즉 기쁨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히 문은 열리고 벚꽃은 피었으니 이 아니 즐거우랴. 그렇게 빠져드는 시간을 심장에서 미세혈관으로 뻗는 하나의 핏줄로 그린다. 당신과 약속한 피를 마시고 당나귀의 행보를 떠올린다. 피가 겉(皮)을 상징했다면 당나귀는 오고 가고 하는 교감의 상징물이겠다. 고향에서 아들이 아비를 죽였단다. 고향이 남쪽이라면 아들 자가 머무는 곳일 것이며 나를 일깨우는 존재가 있다면 아비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 방향은 북이겠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아이가 창궐한단다. 양식은 일정한 모양이나 격식으로 독특한 한 형태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안타까움을 여기 놓여 있는 자 아이는 굶는 것 되고 그 격을 넘어 미쳐 날뛰기까지 한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자화자찬自畵自讚이겠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육이 유행이란다. 의인화다. 자가 자를 죽이는 행위다. 이를 넘어 자가 자를 낳는 행위에서 자가 자를 범하는 것까지 시제가 유형지라 함 생각해 본다. 가뭄이 지나자 폭설이 내려 홍수가 난다. 여기서 홍수는 물이 범람하는 것도 그렇지만 붉은 빛 나무로 올곧게 서 있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 전염이라 할 때 염染은 어떠한 노력이 담긴 글자다. 아홉 구九는 여러 번을 뜻한다. 참고로 부수는 나무 木이다. 근질근질한 시간들. 성스러운 부패의 시간들, 기쁜 병의 시간들, 모두 시 주체를 상징한 말로 시 객체와의 교감이겠다. 이곳은 세속적인 거주지가 아니다. 아무래도 유형지이니까, 구천이라 여겨도 괜찮다면 위리안치圍籬安置나 다름없겠다. 진리가 도처에 즐비한데 왜 이곳에 오셨는지요? 과일 하나 있으면 따먹을까 싶어 왔지요. 밤은 어둠과 검정의 교착지 마치 안개와 같은 흐릿한 몽타주라도 뽑아 들고 탈탈 트는 오른쪽 손목의 진동에 잠은 제대로 잘까 모르겠다. 발정기는 우리가 아는 발정기가 아니고 발한 그 시점일 것이고 암낙타는 암적인 존재 떨어지는 필력에 가깝다. 침 역시 교감이다. 그것이 정이든 합이든 반이든 나중은 어떠한 형태로 남을 것이다. 다시 또 밤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이는 세속의 성전에 이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시간의 길목이다. 이는 골목에 다다른 허수아비일 것이며 어느 눈먼 참새가 쉬어가기라도 한다면 이곳이야말로 성지라 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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