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질 무렵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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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질 무렵
=전희진
인천 큰외삼촌은 문간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창호지 문을 주먹으로 탕탕 두들겼다
어린 나이에도 술 냄새가 싫어 어스름을 밟으며 집 밖을 맴돌곤 했는데
말 못하는 마른 북어처럼 엄마는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두들겨도 털어도 죽어도 없는 돈은 나올 생각을 않고
아래채로 내려가는 엄마의 긴 옥양목 치맛단에 환멸의 먼지가 풀썩였다
과자 봉지 든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막내 고모할머니, 그 손에는 자글자글 햇살 같은 주름살이 모여 살았다
겨우내 조용하던 할아버지가 문지방 위에 젖은 꽃잎처럼 엎질러졌다
내가 약을 먹었노라 죽으려고 약 먹었노라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이 있었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고
방 문턱이 반질반질 닳도록 여럿의 젊은 새어머니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시작시인선 0440 전희진 시집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66p
얼띤感想文
시 한 수 읽는데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오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젊은 시인의 이상한 비유보다는 사실적이면서도 시적 감동을 불러오는 시다. 요즘 세대들이 겪지는 못할 일, 시대상도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에 있다. 문간방 툇마루라든가 창호지 그리고 옥양목 치맛단과 고모할머니 할아버지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 방 문턱, 물론 요즘은 3대가 함께 사는 집안은 잘 없을 것이다. 핵가족화된 가정도 더 쪼갤 것 없음에도 일어나는 이별과 분리는 늘 있기에 말이다. 이 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문지방 위에 젖은 꽃잎에 있다. 꽃잎은 잔을 은유한 시어다. 내가 약을 먹었노라 죽으려고 약 먹었노라,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시가 탄생과 죽음 그리고 내세와 피안을 그린다면 그 과정에 각종 상징과 각종 비유가 시적 놀이로 모는 현대문학보다도 더 울림을 준다. 물론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는 현실적인 내용으로 이루었지만, 시적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가령 인천이라든가 문간방 창호지 술 어스름 북어 산 아래채 과자 겨우내 호랑이 담배 방 문턱을 들 수 있는데 시적인 상상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시어다. 시제 목련꽃 질 무렵 그 죽음의 그 어느 시기에서 한 사람의 생애 단면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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