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다큐멘터리 =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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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24-07-13 22:35본문
리얼 다큐멘터리
=고선경
홍대 술집에 갔다가 한 래퍼를 만났다 “오, 당신이군요 티브이에서 본 적 있어요” 나는 래퍼의 이름을 몰랐지만 “오, 당신”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래퍼는 약간 처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윽고 래퍼의 한쪽 눈에서 미끄러지듯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왜 그러시나요, 당신”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누구라도 나를 알아봐주기를.....” “오, 이 가엾은 사람” 취객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음 사이로 래퍼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오직 나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였다 문득 이 딱한 래퍼에게 세계의 공공연한 비밀 하나를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공평하게 불운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홍대에서는 누구나 래퍼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맙소사, 정말이군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되었다고, 나는 래퍼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를 좀 보시겠어요? 저는 시인입니다 어떤가요? 시인처럼 보이나요?” “시인이라기보다는 ....... 래퍼같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겠어요?” “시인처럼 보여야겠군요” “말이 통하는군” 나는 그가 시인다워 보일 수 있도록 롤렉스를 빼앗고 발렌시아가를 벗겼다 “으슬으슬하네요” “추위를 잘 견디는 시인이 오래갑니다” “두 번 시인인 척하다가는 시신이 되겠는데요” 그는 원망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빈 술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눈치가 빠르네요 시인들은 툭하면 죽거든요 특히 한번 죽을 때 오래 죽는 시인은 뭐, 폼이 끝내주죠 사실 저도 이제 죽었다가 오늘 겨우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를 썼나요?” “그럼요” “어떤 시를?” “오, 씨발, 사랑해, 너 때문에 미치겠어” 그는 이제 경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못참겠다는 듯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래퍼처럼 보이고 싶다고 안달하지 말아요 그건 힙합이 아니에요” 내 말에 그는 몸을 잘게 떨더니 소주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나는 당신처럼 멋진 구절, 멋진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게다가 외롭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어떻게?” “우리의 만남을 생각해요” “아, 떠오른다” 그는 정말로 영감이 떠오른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취객들은 이미 심취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끄덕끄덕.......나는 그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고 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떤 가사가?” “너 힘든 거 나는 다 아는데 너는 왜 내게 기대지 못하는지” “제목은?” “대부업체” 그 순간 술집 스피커에서는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일 년째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대형 신인 걸그룹의 노래였다 술집의 모든 사람이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새벽 다섯 시, 영업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오는데 도무지 날 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학동네시인선 202 고선경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061-062p
얼띤感想文
시제 ‘리얼 다큐멘터리’ 정말 재밌게 읽었다. 요즘 시인의 글과는 판이하다. 시 서두 홍대 술집에 갔다가 한 래퍼를 만났다. 여기서 래퍼는 시 객체다. 시 주체는 시인이며 여기서는 1인칭 시점에서 기술해 놓고 있다. 홍어가 아닌 홍대라는 것도 갖은 술(기술) 다 마셔도 언뜻 좋은 힙합 하나 뽑을 수 있을지 궁금증까지 유발하게 한다. 그 뒤, 래퍼의 상태까지 친절하게 기술한다. 약간 처진 눈과 눈에서 미끄러지듯 눈물을 떨구는 래퍼, 여기서 순간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인식의 순간이다. 사실, 래퍼가 시인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시인이 래퍼를 쳐다보는 것이다. 이 순간이 얼마간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누구라도 나를 알아봐 주기를.......래퍼가 말한 것으로 시인이 말하고 싶은 의도를 대행하듯 읊조리는 일. 오, 이 가엾은 사람. 흐느낌조차 래퍼의 연기로 돌려버리는 시인의 맵시를 본다. 문득 이 딱한 래퍼에게 세계의 공공연한 비밀 하나를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서로의 인식과 교감을 즐기려는 상호작용과 같은 것이겠다. 저는 시인입니다. 어떤가요? 시인처럼 보이나요? 그러나 래퍼는 그를 시인처럼 보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시를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 래퍼의 눈에는 래퍼밖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지금, 이 순간 래퍼에게는 고독하며 앞날은 막막하기에 눈물은 계속 흐를 수밖에 없다. 시에서 보는 그 흔한 시계와 신발을 롤렉스와 발렌시아가로 대치해 버리는 시인, 뭔가 생소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시야를 본다는 그 개념도 있다는 시계, 아! 신발 끈에 대한 시발론은 으슬으슬하다. 춥다. 겨울이 아닌데도 겨울처럼 언 세계관에 대한 동경 그리고 해동 그 반복의 행위에 한 번 죽을 때 오래 죽는 시인은 폼까지 난다는 저 너스레 그래서 생선의 해동은 자연스레 놓아두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도 스친다. 믿거나 말거나다. 오늘 당신은 시를 쓰셨나요? 대본에도 없는 존대로 한 번 물어본다. 그럼요. 어떤 시를 쓰셨나요? 오 씨발, 사랑해 너 때문에 미치겠어. 이 대목에 그만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말았다. 정말 시에 미치지 않고는 저 직설적 설사야말로 누런 콩나물 대가리 하나 똑 따버리고만, 씨발 정말 미쳐버리겠네. 그리고서 경외에 찬 표정까지 아낌없이 지어주고 소주를 병째 들이킨다. 이후 시인과 래퍼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논하고 술을 마시고 병째 흔들다가 잔을 내리치는 일까지 자행하는 순서를 밟는다. 취객은 취객이었고 만남은 만남이었다. 세상 힘든 거 다 알아 새끼야 끄덕거리고만, 래퍼 그러니까 그런 래퍼 어디 한두 일일까만, 대부업체, 대부업체, 대부업체가 오로지 크게 떠 오른다. 제목은? 제목이라 물었지만, 세상 살아가는데 돈 말고 크게 와 닿는 것이 있을까. 자본론(DAS KAPITAL)을 썼던 카를 마르크스도 돈이 있었다면 그 지하 단칸방에서 죽어가는 어린 딸아이를 그냥 지켜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집 스피커에서는 케이팝이 흐른다. 술집. 일 년째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가수는 신인 걸그룹이었다. 모든 사람이 흥얼거렸고 래퍼는 뒷전이었다. 침묵을 지킨 리얼 다큐멘터리. 다섯 시 모두 깨어날 시각. 한쪽은 영업을 마감하고 날 밝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목숨을 걸더라도 시를 쓰고 싶고 그러나 삶의 현실은 그 목숨을 똑 따 버리는 일에 부딪히고 만다. 걸, 어디에 걸어야 할까? 진정 함 생각해봐라! 걸! 에휴 걸.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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