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고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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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회 작성일 24-07-18 06:50본문
뜸
=고명재
한의사는 골똘히 손목을 짚더니 안개꽃이 한 다발 보인다 했다 차갑고 외로운 식물이에요 눈 내린 대나무 숲처럼 고요하지요 명재씨는 속이 차요 뜸을 좀 뜹시다 뱃가죽 위로 쑥이 타고 매캐해질 때 나는 죽은 사람을 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졸업식마다 안개꽃을 들고 온 사람, 가장 많은 수의 꽃송이를 주고 싶었어 가족을 불리고 아침을 차리고 붐비게 살아 그래서 지금 나를 버리는 거라고 했다 그때부터 콧구멍엔 안개가 피고 눈 속에서 백내장이 흐드러지고 그래도 이건 진실이야 사랑해서, 우리는 박하를 짓이겨 배꼽에 밀어넣었어 그럼 언젠가는 네 머리에서 박하향이 날 거라고 우린 실패했고 집은 조용하지만, 쑥이 다 탔을 때쯤 눈이 내린다 배가 돌고 손이 녹고 아이가 부풀고 내가 바란 것은 꽃도 향도 아니었는데
문학동네시인선 184 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022p
얼띤感想文
뜸이라 하면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 말고,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속속들이 잘 익도록 하는 일도 뜸, 이 외 다른 뜻도 몇 있지만, 하나만 더 들자면 한 동네 몇 집씩 모여 있는 구간을 뜸이라고 한다. 우리 어릴 적, 동네 저 윗뜸에 한 번 다녀오느라 아랫뜸에 무슨 일 있었는가 하며 아버지 말씀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는 차분하고 고요하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연인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로 단절된 자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에휴 갑자기 첫사랑이 지나가고 하여튼, 그건 그렇고, 메타포적 시가 닿는 의미는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에 있겠다. 손목 손과 팔의 연결 부분, 안개꽃 무언가 흐릿하며 인식할 수 없는 시적 객체를 묘사하며 차갑고 외로운 식물, 대나무(詩 固體性.堅固性)처럼 강직한 것도 없겠다. 가족과 아침 그리고 박하 물론 박하겠지만 박하는 넓거나博 엷은薄 때리거나 칠拍 그 아래를 상징한다. 시는 늘 실패의 연속이다. 거울처럼 바라보지만, 항시 너는 꿈을 갖고 살며 여기는 굳은 자세에 불과하기에 뜸을 향한 마음은 쑥이 다 탔을 때 깨친다. 쑥, 불쑥 내미는 모양이지만 너무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쑥맥菽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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