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다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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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3회 작성일 24-07-19 21:44본문
그림이 된다
=김상혁
늙은 고양이는 종일 창밖에 앉아 있곤 했다
나는 그런 그림에 어떤 설명을 덧붙이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고양이 대신 이야기하기
‘오늘 날씨가 흐려’
‘저기 울타리 칠이 벗겨졌어, 불길해’
‘어제보다 마당이 깨끗해 보이네’
내가 더 똑똑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생각중인데 고양이가 다가와 창에 코를 댄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은 것 같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나는 십 년 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내를 졸라 비싸게 사 온 황금측백나무 두 그루가 말라죽어가던 여름날이었다 고양이는 말없이 일 년을 더 살다가 마당에서 죽었다
문학동네시인선 192 김상혁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084p
얼띤感想文
시제에서 논한 그림, 그림 화畵가 아니라 그을음이라 할 때 그 그림 묵墨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검정의 포괄적 개념이다. 이것보다 고양이는 그 범주에 들어가는 작은 그을음이다. 마치 천국이 있다면 예수가 있듯이, 물론 종교적인 얘기지만, 성자라 하면 고타마 싯다르타와 마호메트라든가 이 외 여럿을 들 수 있겠다. 모두 천국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성자다. 그러니까 이 시는 어찌 보면 독백이다. 시 결말에 보면 아내를 졸라 비싸게 사 온 황금 측백나무 두 그루가 말라 죽어가던 여름날이었다. 황금이라는 색, 나에게는 죽음을 상징한 듯 어머니만 보인다. 어떤 이는 갓난아이의 기저귀가 생각나겠지만, 또 어떤 이는 황금의 나라 신라(新羅)를 생각하겠지, 그 측백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측백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나가는 과객, 두 그루는 아무래도 원고와 자아自我겠다. 말라 죽어가던 여름이다. 비쩍 그러니까 고르고 골라 뺄 것 빼며 여닫는 그 계절에 고양이(검정)는 말없이 그냥 1년 정도 묵혔다가 내 노는 세상에 던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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