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극 =기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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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극
=기 혁
두려웠던 것은, 그림자 때문에 내뱉은 독설이나 그림자 칼에 찔려 흐르는 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바라보는 표정과 그림자의 목소리와 여전히 장난처럼 가슴께를 짓밟았던 낙관주의자들의 체면(體面)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다는 속단만큼 가로등 밑에는 더 많은 그림자들이 편견으로 드러났지만, 인생의 가장 밝은 곳을 들춰 보다 하얗게 눈이 센 인질들을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가족을 잃은 자들이 서쪽의 행렬을 이룰 때 그들의 슬픔은 여전히 임의 동행 중입니다. 자신의 그림자에 칼날을 겨눠 본 사람에게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도 얼룩이 남고, 얼룩을 들키지 않으려 등을 맞댈수록 이불 위에선 매번 같은 모습의 갈피가 떨어졌습니다. 하오(下吾)의 그림자가 지구의 면적을 비좁게 만드는 사이 갈피를 쥔 손들이 천성(天性)을 가리킵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의 그림자를 향해 손 내밀 수 있다면 석양의 끝자락에 붙은 수배 전단은 당신의 거울입니다.
민음의 시 206 기 혁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32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인질극人質劇’은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붙들어 놓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벌이는 소동이다. 시를 읽는 행위는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 벌이는 인질극처럼 닿는다. 그것은 자신의 시를 쓰기 위해 저 많은 문자를 붙들며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벌이는 소동처럼 지면이 하나의 가상공간이라면 실제 돌아가는 세상도 이와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에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은 피해를 보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 일어난 사건들 우리 주위에 꽤 많다. 뉴스나 공공연히 떠들지 않더라도 개인의 역사를 들춰보더라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이다. 여기서 그림자는 시 객체를 상징한다. 시 객체가 그리는 어떤 상까지 포괄한다. 그림자가 어떻게 읽었던 그것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며 얼룩에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과 얼룩까지도 시는 시의 문자는 시의 문자와 문자를 이루는 문장은 끝까지 그림자와 동행한다. 그것은 어쩌면 변명 같기도 하지만 얼룩을 들키지 않으려고 등을 맞대며 함께 이불을 덮고 자는 행위, 신께 단연코 맹세를 걸고 말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건대 아니라며 저 친구와는 견주지 마라며 말했지만, 석양 끝 붉은 노을은 숨길 수 없는 진술이었음을 어쩌면 그림자는 애써 또 감추며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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