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남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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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
=남지은
이사를 했다
주전자엔 새 물이 끓고 있다
익숙한 데서 옮겨와
유리잔 몇 개는 꽃병이 됐다
문득 궁금했고 자주 궁금했던 친구들과 앉을
식탁엔 꽃병을 두었다 꽃도 말도 정성으로
고르고 묶으면 화사한 자리가 되어서
곁이란 말이 볕이란 말처럼 따뜻한 데라서
홀로는 희미한 것들도 함께이면 선명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문학동네시인선 남지은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086p
얼띤 드립 한 잔
어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은 모르지만, 한 남자가 어느 사막에서 깊은 웅덩이 같은 곳에 갇혀 그 속 어떤 여인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풍경을 그린다. 아이를 낳고 그러나 남자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애쓰지만 나갈 수 없는 고립된 지역이다. 결국, 발버둥 치는 남자와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아내와 여러 자식이 있다. 남자는 돌연변이라는 느낌, 현대사회에 아니 남자는 유사 이래, 줄곧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애만 낳고 가족과의 거리는 멀고 먼 어떤 존재였다. 결혼하기 전에도 외로웠다면 결혼한 후에는 더 외롭다는 사실, 오로지 마트료시카 내 안에 든 말과 말 안에 든 말과 그 말 안에 든 말, 수없이 많은 말과의 친구를 사귀면 익숙해지다가도 또 이사하며 몇 개는 유리잔처럼 맑은 것이 나오고 또 몇 개는 꽃병에 담을 수가 있다. 주전자, 물론 물이나 술을 담을 수 있는 용기지만 붉을 주朱 전할 전傳 글자 자字로 대체해 본다. 지금 마트료시카라는 새로운 시를 읽고 있듯이 읽는다는 말은 내 마음을 끓이는 상황이다. 붉게 열정을 담으며 말이다. 문득 궁금했고 자주 궁금했던 친구들과 앉을, 그다음 나올 말은 ‘자’이겠다. 문득 궁금했으니까 읽고 파고들며, 자주 궁금할 친구와 앉을 수 있는 시를 쓰는 행위를 낳는다. 곁이란 말이 볕이란 말처럼 따뜻한 데라서 말이다. 곁은 항시 말이 있었고 볕처럼 그것은 따뜻했다.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마음은 쓰는 것으로 하고 그 마음 폈던 것을 본래 모습의 갖추는 일 이는 접는 일이겠다. ‘적게’ =쓰다, ‘접어서’ =개다, 걷다(유의어). 마음을 비우면 친구들이 와. 지금 적는 감상문처럼, 커피잔, 마음을 담는 것으로 검정을 상징하며 동그란 자국은 구체를 은유한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그 끝은 역시 행복임을 내 마음은 굳건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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