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은 척하는 식물들의 이야기를 한다 혹은 죽어가는 제 몸을 보며 미친 듯이 꽃을 피우는 식물의 이야기도 한다 살찐 벌레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발을 일관되게 움직여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동안 여름에 영혼을 다 바치고 여기서 뭐하세요 죽었는데 죽은 줄도 모르고 무슨 밥을 먹어요 누구세요 아무도 묻지 않는 건 여기가 그런 세계이기 때문 초록은 초록을 밀어내면서 초록이 되고 초록으로 전염되면서 초록이 되고 초록은 초록에 붙잡혀 흩어진다 멀어진다 더는 낭떠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 죽은 나무들처럼 나는 같이 놀고 싶어서 혼자 울었는데 여기는 돌아가지 않는 자들의 세계 갈라지지 않으면 죽는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일 정원에 갇혀 정원을 만든다 여긴 아무도 없는데 나는 서 있다 서 있는 것들끼리 싸운다 종일 싸운다 싸우다가 지쳐 서로에게 얹은 손을 치운다 여름의 감옥에 갇힌 지 오래 손금에서 자라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오늘의 양식 버드나무 껍질에 쓴 문장들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과 밥을 먹기로 한다
문학동네시인선 217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하게 063p
얼띤 드립 한 잔
정원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죽은 척하는 식물과 죽어가는 제 몸을 보며 미친 듯이 꽃을 피우는 식물은 정원에서 생기는 일이며 서로가 다투며 경쟁이나 하듯이 싸우는 일 같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가 서로가 밥을 떠먹거나 떠먹이는 일까지 수반한다. 식물처럼 한 곳에 박혀 뚫어지게 바라보는 현상은 혹여 벌레 한 마리라도 붙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거기서 수십 개의 발로 일관되게 움직임으로써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여름을 즐기는 일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죽었는데 땅은 바닥은 살아서 움직인다. 이것은 하나의 그림자다. 이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으며 실제 죽은 자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재밌는 현실은 이러한 그림자가 생전에 보지 못한 죽은 자의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하거나 형태미까지 닮아가는 현상을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초록은 초록을 밀어내고 초록이 되고 초록으로 전염되면서 초록이 되고 초록은 초록에 붙잡혀 흩어지다가도 멀어지는 꼴을 유발하는 것이다. 나는 이 따분한 하루의 고리에서 정원이라는 세계에 들어와 있다. 이것은 여름의 감옥이라 해도 무관하며 한 술씩 떠먹이는 밥과 한 술씩 떠먹는 밥을 진행한다. 이만 여기서 밥숟가락을 놓을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