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키아*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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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6회 작성일 24-08-07 16:34본문
코르키아*
=이승희
죽은 식물은 귀신 같아 라디오를 틀어주었다 화분들 사이로 냇물이 생겨난다 무언가 생겨난다는 것은 또 슬픔 일이 될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생이 그랬으니까 함께 했던 시간들이란 얼마나 넓은 감옥이 되는가 그런 거 빨리 버리라고 했다 그런 거 빨리 버리고 나면 나는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일요일처럼 바라보는 습관 그래도 거기 있는 거 맞지요 그건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알게 되는 슬픔 그런 거라면 놓지 말고 움켜쥐어야 하지 겨울은 그렇게 오랫동안 만들어지니까요 그런 겨울을 갖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기로 합니다 보세요 냇물은 여전히 흐르고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는 물고기처럼 파국은 지금도 어디선가 소리 없이 자라고 있어요 그런 아름다움이라면 좋아요 물고기 뼈 같은 가지마다 얹힌 죄의 목록들을 하염없이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나를 부디 나무라지 마시길요
*뉴질랜드가 원산지인 야생화
문학동네시인선 217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106-107p
얼띤感想文
손=崇烏
바깥은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으니 웬만큼은 이해해, 전에 삶은 감자를 몇 개 담아서 바깥에 다녀왔다지 참 잘한 거야, 그건 네가 최선의 시간에서 최선으로 닿는 아주 자연스러웠어. 올여름은 비가 참 많이 왔어, 바깥은 온통 무화과로 덮였단다. 예전과 다른 건 과실이 참 굵고 실하다는 데 있지. 늘 하나씩 따 모으다가 오시는 바깥에 하나씩 내 드리기도 하지. 고양이는 새끼를 쳤고 오시는 바깥은 매번 신기한 듯 바라보곤 하지. 그래도 좀 나은 것 없지만 그래도 매번 찾는 바깥은 있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 같아. 나는 온종일 틀어박혀 있지만, 미칠 것 같고 답답함에 숨쉬기조차 힘들 때도 있어, 모두 흘린 피 때문일 거야. 골목에서 만난 모퉁이들이 도로 등쳐먹고 간 일 때문이지. 요즘은 이것도 국제적으로 고개를 드는 것 같아, 얼마 전에는 물 건너 튀어 오른 물고기가 있었고, 이런 건 모두 사기라며 고개에다 얘기해 줬지만, 고개는 도통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어, 참 안됐지. 그나저나 오늘은 아침저녁으로 조금 다른 거 같아. 가을이 오려나 하며 바깥을 거닐기도 했어, 이곳저곳 다녀본 데는 없어도 이곳저곳 골목은 다 다녀봤으니 후회는 없어, 함께 한 시간은 어떤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참 미안해 뭐 혼자 되뇌지만, 죽어서도 용서받기는 힘들 거 같아. 그럼 굳은 악수를 청하네. 언제 다시 볼 날 또 있겠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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