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꽃잎 / 최하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19회 작성일 18-04-02 02:37본문
기억 꽃잎 / 최하연
바람은 안에서 밖으로 불고
빗방울은 아득한 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내 편 아닌 모든 것은 잠들라
아침이면 난 이곳에 없으리니
용케 젖지 않는 꽃잎도
꽃잎 아래 웅크린 하늘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꿈은 밖에서 젖는다
잠들라, 젖지 않는 밤의 노래도
부르지 못한 이름도
다 잠들어라
내 안으로 자라는
마른 뿌리도
기약 없던 당신의 마른 젖가슴도
이제는 젖어서 모두
꿈 밖에 놓인다
하늘로 떠가는 새와
그 아래 잠든 침묵이여
숲이 숨길 수 없는
비밀의 무게와
저 적막한 입술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간절한 기도도
벼락처럼, 이슬처럼,
잠시 왔다가 내버려 두는
하얀 손의
악몽 같은 것들도
이 바람 속, 이 아득한 물방울 속에서
다 잠들라
* 최하연 : 1971년 서울 출생, 2003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 <피아노>외
# 감상
내 앞에 놓인 당당하지 못한 것들 모두 물러가라
나에게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던 내 기억의 꽃잎들아
나에게서 잠들라
당당함이 넘쳐 자신감에서 오는 도도한 위세와
텍스트의 흐름이 명령어를 사용하는 어휘라든가 운율
이나 율격이 7, 80년 대 민주화운동 당시의 격문 같지만
화자의 기억 속의 활달한 사유들에 대한 화자의 집념이 녹아있다
어린날의 소묘 / 호암
상이군인집 뒤 늙은 밤나무에
집짓던 까치 높이 날며 떼 지어 울면
할머니 담뱃대 길게 물고 툇마루에 걸터 앉아
까치 저리 울면 반가운 손님 오시지, 일러주셔서
서울로 시집 간 누님 친정 오나 기대하면서
가파른 뒷산 고갯길 쳐다보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쳐다보았지
여름비 퍼붓는 장마철 되면
긴 참나무가지 낙싯대 만들어
탑골 합수머리 가면
서툴러도 몇 마리는 잡을 수 있어
어머니 시집올 때 따라온 까만 뚝배기에
검은콩 함께 넣어 바짝 졸여서
할아버지 밥반찬 해드리면
고놈 참 고놈 할아버지 좋아하셨지
동구 밖 서낭당 건너편 외 딴 길은
도깨비 산다는 곳집 있어 못 다녔지
양창 아저씨네로 심부름 보내면
무서워 못 간다고 버티어 보지만
휘드르는 어머니 부지깽이 당할 수 있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