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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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8회 작성일 20-08-11 02:30본문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 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나?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 진은영 : 1970년 대전광역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2013년 제21회
<대산문학상>수상,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등
< 소 감 >
일곱 개의 단어 풀이가 요즘 세상의 물상을 적날하게 나타내고 있다
요즘 우리사는 세상은 삭막하고 험악해서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난맥
상을 보이면서 만년된 내로남불이 개구리 울음처럼 소란스럽다
검은 고양이가 흰 고양이 되어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외쳐대니 이보다
더 악다구리 같은 세상 있을까?
그래도 문학이 있어서 詩라는 장르가 있어서 한줄기 빛으로 바라보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생피를 찾아서 / 湖巖
황야의 총잡이 내 친구 황야를 누빈다
딸랑 총 한 자루에 목숨을 건 총잡이의 가슴 속에는
빨간 뱁새가 산다
삭막한 땅 적셔줄 생피를 찾아서
마도로스파이프 비스듬히 꼬나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쏘는 대로 빗나가는 총알, 총알,
어젯밤 겨뤘던 외는박이 녀석은 어디서 찾나
그와의 한판 승부는 숙명적인 것
뱁새의 눈동자에 찬바람이 인다
0.1초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거친 황야
해와 달과 바람은 그의 친구
생피만 찾는 독수리눈과 여우이빨도 그의 친구
결투로 시작해서 결투로 끝나는
총잡이의 하루는 총잡이의 전부다
눌러 쓴 중절모에 감도는 석양빛 갈기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애꾸눈을 향해
회심 찬 방아쇠를 당기고 휘파람은 불지만......
집토끼도 산토끼도 멀고 먼 안개 속인데
황야의 총잡이 내친구 오늘도
탕, 탕, 자판기 두드리며 새벽길 달린다
생피를 찾아서
달리는 말굽마다 박꽃은 피었다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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