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트럭들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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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2회 작성일 20-11-23 00:58본문
이 도시의 트럭들 / 나희덕
돼지들은 이미 삶을 반납했다
움직일 공간이 없으면 생각도 사라지는지
분홍빛 살이 푸대자루처럼 포개져 있다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들은
당신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가
짝짓기 직전 개들의 표정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눈망울에서
당신은 어떤 비애를 읽어내는가
아니, 그 표정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도시의 트럭들은
너무 많이 싣고 너무 멀리간다
엿가락처럼 휜 철근들과
케이지를 가득 채운 닭들과
위태롭게 쌓여 있는 양배추들과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은 원목들을 싣고
트럭들은 무엇을 실었는지도 잊은 채 달린다
커브를 돌 때마다
휘청, 죽음 쪽으로 쏟아지려는 것들이 있다
*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문예> 등단, 2019년 제21회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 <뿌리에게>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 다수
< 소 감 >
제목이 말해주듯이 흔히 있는 거리의 풍경이지만 평범 속에
암시성이 강해서 의미 찾기에 골몰해 본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4차원의 세계를 구성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한 세상에서 한 세상으로 옮겨가는 듯 질주하는 트럭에서의
사유들이 쿡, 쿡, 독자의 마음을 찔러온다
온갖 잡탕을 싣고 무섭게 달리는 저 트럭이 세상의 온갖 번뇌
를 끌어안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은 아닐까?
또 저 트럭 속에 실린 푸대자루처럼 포개진 돼지들,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들의 눈망울, 케이지 속의 닭들은 모두가 오늘을
견디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 하고 싶어 한다는데,
각박하게 사는 우리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이미지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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