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 채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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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9회 작성일 20-12-07 03:28본문
구독 / 채수옥
오늘의 구름은 빨갛게 구워진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 접어놓은 페이지에서 빗방울들이 머뭇머뭇, 억측과 가짜가
난무하는 구름 속에서 부리 없는 새들이 빠져나온다.
종교학 대신 포도밭을 구독하기로 한다. 매년 아슬아슬한 허공이다. 벌레와 우박과 햇빛 위에 별표를 그리고 봄
부터 가을까지 천천히 마음을 졸이며 읽어가는 페이지.
구름은 때때로 다른 몸을 입고
섹션마다 다른 맛들이 열린다.
고양이 카페에서 눈이 마주친 너는, 심장 아래쪽을 흘러 천천히 내 삶의 목록 속으로 들어왔다. 최근 들어 가장
흥미로운 잡지.
새로운 꼬리
새로운 모자
새로운 연애
너를 정기 구독해도 될까?
흐르는 구름만큼 너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필자, 창을 수평선 쪽으로 기울이며 나는 긴 혀를 꺼내 위독한 서쪽
노을을 읽는다.
까무러치는 파도가 특집처럼 밀려온다.
난해한 사례들이 펼쳐진다.
* 채수옥 : 1965년 충남 청양 출생, 2002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비대칭 오후> 등
< 소 감 >
책, 신문, 잡지 따위를 정기적으로 구입하여 읽는 것이 구독이다
지식과 정보를 싣고 나에게 와서 뒹글며 놀다 나를 떠나 쓰레기가 되어 사라지고
그래서 구독은 흐름이다
새 것이 헌 것이 되고, 낙이되고, 욕이되고, 저주, 쾌락, 중독이 되고, 칸별로 장별로
카드 같은 섹션으로 물이 흘러가듯 가짜와 진짜와 뒤범벅이 되어서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기도 한다
어떤 구름은 희망이 되고 어떤 구름은 좌절이 되고 이성과 한 통속이 되어 놀고 있다
뒤돌아보면, 시간 속에서 시간 속으로 공간과 어울려서 지나온 사유가 아득하구나!
*
물 위로 떠가는 나뭇잎 하나
둥둥 떠서 가는 나뭇잎 하나
가다 바위 만나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 있으면 하룻밤 쉬었다 가고
나무숲 사이로 달 뜨면
달빛하고 놀다
지나는 뚝방에 쑥부쟁이 피었으면
눈인사도 나누고
소금쟁이 따라오면
길동무 하면서
곤두박질 쳐보고
자맥질도 하면서
가슴 벅찬 순간도 뼛속 깊은 고난도
한줄기 자나가는 바람,
- 여정 / 湖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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